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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08062801
· 쪽수 : 124쪽
책 소개
목차
□ 이 책을 읽는 분에게·7
호질·15
양반전·27
허생전·34
광문자전·55
김신선전·63
우상전·71
열녀 함양박씨전·89
예덕선생전·98
민옹전·107
□ 연 보·123
책속에서
범은 얼굴을 찡그리고 구역질을 하면서 코를 가리고 머리를 옆으로 틀고 탄식하며 말했다.
“에이, 선비한테서 냄새가 나는구나.”
북곽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기어서 앞으로 나아가 세 번 절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며 말했다.
“범의 덕은 지극하십니다. 어른들은 그 변하는 것을 본받고, 제왕帝王은 그 걸음걸이를 배우며, 사람의 자식은 그 효성을 본받고, 장수들은 그 위엄을 취했습니다. 이름이 신룡神龍과 함께 하나의 바람이요 하나의 구름이 오니 하토下土의 천한 백성은 감히 그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범은 꾸짖었다.
“앞으로 가까이 오지 마라. 전에 내가 들으니 선비는 아첨한다 하더니 과연 그러하구나. 네가 평시에 천하의 악한 이름을 모아서 망령되이 나에게 더하더니 지금은 일이 급해져서 눈앞에서 아첨을 하지만 장차 누가 믿겠느냐. (하략)"
- 21쪽 <호질>
“양반이란 겨우 이것뿐입니까.
내가 듣기에 양반은 신선과 같다던데 겨우 이것뿐이라면 별로 신통한 맛이 없군요. 더 좀 좋은 일이 있도록 고쳐주십시오.”
이에 군수는 문서를 고쳐 다시 썼다.
“하늘이 이 백성을 낼 때, 네 종류의 백성을 만들었다. 이 네 가지 백성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선비요, 이것을 양반이라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아도 된다. 글만 조금 하면 크게는 문과로 나가게 되고 작아도 진사는 된다.
문과의 홍패紅牌라는 것은 크기가 두 자도 못 되지만, 여기에는 백 가지 물건이 갖추어져 있다. 이것을 돈자루라고 부른다. 진사는 나이 30에 초사初仕를 해도 이름이 나고 딴 모든 벼슬도 할 수가 있다. 귓머리는 일산바람에 희어지고, 배는 종놈들의‘ 예!’하는 소리에 불러진다. 방에는 기생이나 앉혀두고, 뜰에 서 있는 나무에는 학을 친다. 궁한 선비가 되어 시골에 살아도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있으니, 이웃집 소를 가져다가 자기 밭 먼저 갈고, 마을 사람을 불러다가 내 밭 먼저 김매게 한다. 이렇게 해도 어느 누구도 욕하지 못한다. 잡아다가 잿물을 코에 들이붓고 상투를 잡아매어 벌을 준대도 아무도 원망하지 못한다.”
부자는 그 증서를 받자 혀를 내밀어 보이면서 말했다.
“제발 그만두시오. 맹랑합니다그려.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시오?”
이렇게 말하고 부자는 머리를 손으로 싸고서 달아나 버렸다. 그러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이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32~33쪽 <양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