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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

홍염 (외)

최서해 (지은이)
  |  
범우사
2016-12-10
  |  
4,9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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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

책 정보

· 제목 : 홍염 (외)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08062924
· 쪽수 : 170쪽

책 소개

범우문고 292권. 일제하 시대의 최서해 문학의 대표작품인 홍염, 서막, 갈등, 무명초 등이 수록되어 있다. 최서해의 문학은 신경향파 문학론의 특징을 가장 전형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최서해 하면 계급 대립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7

홍염 17
서막 49
갈등 69
무명초 122

작가 연보 166

저자소개

최서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924년 「토혈」, 「고국」으로 등단했다. 1925년에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여 중견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김기진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다. 1927년에는 조선문예가협회의 간사직을 맡았으며 전 해에 휴간한 조선문단을 남진우가 인수하여 1월에 다시 입사하지만 4월에 또 실직했다. 위문 협착증을 앓던 그는 대수술 중에 과다 출혈로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은 ‘체험문학’, ‘빈궁문학’, ‘저항문학’으로 규정된다. 몇 명의 엘리트의 눈으로 바라본 일부의 삶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한 대다수의 극빈층의 생활상을 날카롭게 표현해 그들의 울분과 서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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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최서해는 함북 성진군 임명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학송이다. 그는 초기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모든 영예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흔히 신경향파 문학으로 불리는 초기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3·1운동을 전후해 좌표를 상실한 부르주아 계몽 문학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일제에 의한 식민화 이래 퇴행의 길을 걸어오던 부르주아 계몽 문학은 3·1운동 이후 급속히 개량화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에 따라 한국근대문학은 부르주아 계몽 문학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들을 모색하면서 다기한 분화상을 보여준다.
최서해의 문학은 신경향파 문학론의 특징을 가장 전형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최서해 하면 계급 대립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최서해가 계급 착취와 그로 말미암은 갈등에 주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민족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최서해에게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는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있다. 요컨대 최서해 문학에서 민족 문제는 곧 계급 문제이고 계급 문제는 곧 민족 문제이다.
전기 최서해 문학의 무대는 거의가 ‘간도’이다. 간도로 상징되는 만주는 우리 민족에게 민족적·계급적 모순과 갈등이 중첩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최서해는 1918년부터 1923년까지 5년여에 걸쳐 만주에서 살면서 온갖 체험을 했다. 이때의 만주 체험은 최서해 문학의 원체험이 되어 그의 모든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최서해의 만주 체험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이 ‘밑바닥’ 체험이다. 만주에서 최서해는 노동자 생활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민중 체험이라 할 수 있는 밑바닥 생활은 최서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민중들의 삶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삶이 곧 민중의 삶이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민중의 삶에 대한 관심과 직통(直通)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최서해 문학은 두 가지 선택을 함께 보여준다. 어떻게 같은 작가가 두 경향의 작품을 동시에 쓸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을 풀어줄 열쇠가 바로 ‘호소할 곳이 없다’라는 심리 상태이다.
최서해는 자신의 작품 곳곳에서 ‘호소할 곳이 없다’는 절박감을 토로하고 있다. ‘참을 수 없다’거나 ‘오갈 데 없다’거나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등등 극한의 한계 상황에 몰린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구절들을 최서해의 소설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극한적 위기 의식은 최서해 문학의 주인공들을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심리적 동인(動因)이다. 살인과 방화이건 독립운동에의 투신이건 심리적 동기는 똑같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살인·방화와 독립운동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양자는 실존적 위기 의식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인 셈이다. 다만 그 실존적 위기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살인이나 방화로 나아가는 것이고, 그것을 민족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면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것이다.
최서해 문학에서 개인적 복수와 독립운동에의 투신이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최서해 문학의 탈식민적 가능성을 규명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는 독립운동에의 투신이 개인의 실존적 위기를 민족이라는 집합적 존재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서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서해 문학에서 민족이란 개인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선험적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결사체(結社體)이다.
최서해는 만주 체험에 근거해 계급적 착취와 차별을 민족적 착취와 차별로 받아들였다. 만주가 조선인에게 민족적 착취와 계급적 착취가 중첩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양자의 동일시는 현실적 근거를 가진다. 최서해 문학의 호소력은 그로부터 발원한다.
그런 점에서 최서해 문학의 민족, 곧 민중적 결사로서의 ‘아래로부터의 민족’은 문학사적으로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 민족 형성에 대한 민중적 경로를 제시함으로써 한국근대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탈식민에 대한 민족주의적 전망이 지닌 원천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예비해준 것이다.
최서해 문학은 재만 조선인들의 삶을 통해 그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민족 서사는 이전까지의 한국근대문학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라는 점에서 탈식민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특히 민족주의와는 다른 기획, 곧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족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사실은 최서해 문학에 있어 중요한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주의가 민족을 창출한다’는 겔너의 유명한 명제처럼 민족은 민족주의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서해의 문학은 민족이 민족주의의 전유물이 아님을 예증해준다. 최서해 문학은 개인의 실존적 위기가 어째서 민족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는지를 만주라는 공간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가 뒤섞이면서 계급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직결된 이념에 대한 사유가 정지되고 만 셈이다. 이 대목에서 최서해 문학은 다시금 민족주의에 포섭된다.
물론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의 내적 연관과 차별성을 동시에 읽으려 노력한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나오는 작품 〈홍염〉이 대표적이다. 〈홍염〉은 지주 대 소작의 비대칭적 관계를 축으로 작품의 서사가 구성되어 있다. 〈홍염〉은 조선에서나 만주에서나 문 서방은 똑같이 소작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요컨대 지주 대 소작이라는 계급적 관계는 어디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가와 문서방의 기본 관계 역시 지주/소작 관계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인가와 문서방의 비대칭성은 계급적 비대칭성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이다. 딸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인가가 주는 돈을 거절하지 못하는 문서방의 심리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인가와 문서방의 관계를 민족적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돈을 거절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순수한 민족적 관계에서는 돈이란 이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서방이 인가의 돈을 받았다는 것은 결국 둘의 관계가 경제에 의해 규율되는 계급적 관계임을 말해준다.
이처럼 〈홍염〉은 인가와 문서방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계급 관계로 규정하면서 서사를 풀어나간다. 여기에 민족적 갈등이 중첩되면서 문제가 증폭된다. 빚과 소작료를 갚지 못했다고 딸을 빼앗아가는 인가의 행태를 ‘되놈’의 반(反)인륜적 관습과 연계시키면서 민족적 갈등이 본격화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문서방의 아내가 환각 상태에 빠져 “아이구, 우리 용녜가 죽소! 저 흉한 되놈에게 깔려서~”라고 외치며 피를 토하고 죽으면서 절정에 이른다. 그런 점에서 문서방의 살인 행위에는 계급적 저항과 민족적 저항이 중첩되어 있다. 요컨대 비대칭적 계급 관계에 대한 분노와 민족적 수난에 대한 복수심이 병존하고 있는 셈이다.
최서해 문학에서 〈홍염〉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이 작품에 와서야 명실상부한 의미에서의 ‘계급의 발견’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전까지의 최서해 문학은 계급 문제가 민족 문제에 해소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한 계급적 갈등조차도 어느새 민족적 갈등으로 치환되곤 한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민족 문제를 민중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민중적 결사로서의 ‘아래로부터의 민족’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문학사적으로 획기적인 의의를 갖는다.
작품 〈홍염〉에서는 계급적 착취와 그로 말미암은 갈등이 서사의 축을 이루면서 거기에 민족적 갈등이 중첩된다. 계급적 갈등이 축을 이루는 까닭은 지주/소작 관계가 착취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사의 축에 민족적 갈등을 접합시킴으로써 〈홍염〉은 만주에서 계급적 갈등이 작동되는 특수한 방식, 곧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가 중첩되는 과정을 실제와 비슷하게 보여준다. 계급적 착취와 대립이 그 자체로만 순수하게 현상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에서 〈홍염〉은 참다운 의미에서의 ‘계급의 발견’을 성취한, 즉 계급 문제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통일적으로 포착한 선구적 작품이라 할 만하다. 1920년대의 한국문학을 통틀어 보더라도 계급 문제에 대해 이러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홍염〉에서 최서해는 계급 문제가 민족 관계 속에서 어떻게 특수화되는지를 규명했다. 최서해 문학을 결말부만 놓고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결말부까지 이르는 서사의 전체 과정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홍염〉의 서사 구조는 대단히 탄탄하다. 특히 계급적 착취가 민족적 차별과 접합되어 가는 과정은 이중의 착취와 차별로 고통받던 재만 조선인들의 현실과 적절히 조응하면서 결말부의 개연성을 한껏 높여준다. 그 과정에서 문서방의 살인 행위는 계급적인 동시에 민족적인 저항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되었으며, 그런 점에서 〈홍염〉은 탈식민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홍염〉 이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계급적 각성에 기초한 민족적 저항의 세계였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성숙도 좀더 앞당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서해는 만주로부터 조선의 현실로 눈을 돌리면서 급속히 일상성의 세계로 빠져들어 간다. 민중의 삶은 사라지고 지식인과 소시민의 일상이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계급 문제를 다룰 때에도 소박한 휴머니즘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며, 민족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또한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식인의 프롤레타리아화를 풍자적으로 그린 〈무명초〉(1929)라든가, 〈서막〉(1927), 〈갈등〉(1928) 같은 작품은 최서해 문학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들에서 우리는 풍자나 서정 같은 최서해 문학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때 이른 요절(32세)로 인해 더 이상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만다.
― 하정일 교수(원광대 한국어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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