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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88925125015
· 쪽수 : 432쪽
책 소개
목차
서문
1장~58장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1)
주위에는 대규모 철거 공사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수두룩했다. 복도 바닥은 위에서 떨어진 천장재와 이제 전기가 끊어져 쓸모없이 되어버린 전선들을 고정했던 긴 알루미늄 조각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것이 과거 20세기에 세워졌던 ‘새로운 건물들??의 최후였다. 한때 위용을 자랑하던 최신식 건물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회벽 덩어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건물이야말로 그림자가 가장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비밀스런 공간. 하늘 높은 곳이나 땅속 깊은 곳 혹은 칠흑 같은 어둠 속. 반쯤 짓다 말았거나 폐쇄된 어지러운 공간. 인적이 끊긴 음침한 터널이나 아찔할 정도로 높다란 지붕 위가 그에겐 최고 은신처였다.
램프 불빛 속으로 공중을 떠다니는 뿌연 먼지가 보였다. 둥지 속에 있던 비둘기들이 푸드덕거리며 날기 시작했다. 그 비둘기들은 진짜였다. 버클랜드 회사가 만든 로봇 비둘기가 아니었다. 비둘기들이 깜짝 놀라 위로 날아가다 천장에 부딪혀 떨어졌다. 미친 듯이 퍼덕이는 날갯짓 때문에 회벽 조각이 또 떨어졌다. 반들반들한 갈색쥐가 커다란 몸을 꿈틀거리며 바닥 위를 기어가는 게 보였다. 쥐는 마치 길을 가로막으려는 듯 망토 입은 남자 앞에서 정지했다. 쥐가 고개를 들자 벌겋게 이글거리는 두 눈이 보였다. 매서운 입매 사이로 아래위로 가지런히 난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다. 쥐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접근 금지! 제한 구역! 제한 구역!
2)
“사실 여긴 진짜 도시가 아니야.”
“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긴 몇 년 전에 박물관의 용도로 지어진 도시야. 그런 걸 ‘테마파크??라고 해. 이 도시의 가장 바깥 경계선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들은 과거의 런던을 그대로 본 따거나 다시 복구해서 만든 거야. 그러니까 모든 게 그냥 환상이란 말이지. 이 모든 것들이 옛날에 존재했던 도시를 그대로 재현한 거란 뜻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여기서 사는 걸 좋아해. 옛날 방식으로 사는 거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돈을 내고 여기 와서 우리가 옛날 방식으로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거야.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과거를 경험하는 거지.”
그쯤 되자 내 머리는 핑핑 돌고 있었다.
“이 도시 이름이 ‘과거세계??야. 과거의 런던이란 뜻이지. 그리고 관광객들은 우리가 사는 이 빅토리아 시대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오는 거고. 이 시대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천박함, 위험, 더러움까지 모두 체험해 보려고 말이야.”
머리가 계속 어질어질했다.
“그럼 우리가 진짜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요?”
“그래, 이브. 사실 우린 1880년대를 훌쩍 넘어선 시대에 살고 있어. 과거세계의 바깥, 우리를 둘러싼 이 스카이 돔 밖은 2048년이야. 여기와는 완전 딴판이지.”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글쎄.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 혼자만 이런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게 아냐. 여기 사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여기서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 무시당하고 사는 사람들 모두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그들도 이 세계가 가짜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이 세계는 여러 면에서 현실이야. 그냥 이름뿐인 세계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