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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란

석파란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

류서재 (지은이)
  |  
청어람
2012-04-09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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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미지

석파란

책 정보

· 제목 : 석파란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25128177
· 쪽수 : 512쪽

책 소개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 조선 역사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로 왕을 대신해 섭정을 한 흥선대원군은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불우한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젊은 시절 파락호 생활을 하면서 안동 김씨 세력의 눈을 피했으며, 조대비와 인연을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기틀을 마련했다. 이런 이하응의 삶은 다양한 시각에서 평가 받는다.

목차

서문
1장-네 마음이 내 마음이다
2장-배신의 얼굴
3장-네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다
해설- 난세에 난초를 그리다

저자소개

류서재 (지은이)    정보 더보기
- 고려대학교 문학 박사 <고대문학 신예작가상> - 장편 <사라진 편지> 여성동아 장편소설상 - 장편 <석파란> 황금펜영상문학상, 고대문학 신예작가상,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작 - 단편 <한없이 부풀어오르는 말들에 관하여> 아시아문학콩쿠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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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민씨 부인은 방바닥을 둘러보며 종이 뭉치를 한 장씩 펼쳤다. 지란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구겨졌는데 먹물은 하나도 번지지 않았다. 남편이 정성스럽게 먹을 갈아낸 흔적은 종이에 그대로 배어 있었다. 밤을 새우셨어요? 민씨 부인은 손바닥으로 자잘한 구김살들을 폈다. 한 장씩 종이를 펼수록 마음이 아파왔다. 오늘은 과작이네요. 민씨 부인은 윗목에 나뒹굴고 있는 종이 뭉치를 다 가져왔다. 종이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항로, 김순성, 이돈, 이사규, 이극선. 이 사람들 누구예요? 이하응이 황급히 종이를 빼앗았다. 민씨 부인이 방문으로 달려가서 두 팔을 벌리고 남편을 막아섰다. 종이의 이름들은 이하전의 죽음에 연루된 사람들이었다. 이하응은 아내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저고리의 노란색은 탁해졌고 치마는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흐린 남색이었다. 옷고름을 진한 보라색으로 만들어서 겨우 멋을 낸 듯했다.
―제발, 죽은 사람은 잊으세요. 하전이가 안동 김 씨들 앞에서 이 나라가 이 씨의 나라냐, 김 씨의 나라냐 따졌다는 소문도 있어요.
민씨 부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은 아내의 자존심이었다. 눈가에 고인 눈물에는 왕가의 여인으로 살면서 안으로 삭이고 삭였던 두려움이 있었다. 이하응이 아내의 미간을 쓰다듬듯 쳐다보았다. 민씨 부인은 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참아야겠지. 그놈의 왕족이 뭔지 하루라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소. 왕족이 옷이라면 벗어던지고 싶어. 내 마음은 수없이 벗었소. 하지만 내가 벗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나도 모르게 또 입고 있소. 내 맘대로 안 돼.
이하응이 고백하듯 말했다. 아내의 눈동자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냥 시름을 풀려고 여행 가는 거요. 이하응은 아내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남편의 눈동자에 수백 가지 말이 담겨 있었다. 민씨 부인은 남편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과한 상상에 가슴이 조여들었다. 이 정체 모를 불안함이 세상일을 모르는 아녀자의 소견 때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하응은 병풍을 향해 돌아섰다. 짐을 싸야 할 시간이었다. 병풍 속에도 길이 있었다. 길옆 기다란 바위를 따라 매화꽃이 피어 있었다. 그리고 바위산이었다. 구름과 눈이 똑같이 희었고, 불투명한 흰색을 따라 여백은 확장되었다. 새하얀 설경이 마음을 이끌었다. 햇빛과 꽃 때문인지 과하지 않은 차가움이 느껴졌다. 조선의 어디쯤 분명 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세상일이 다 그렇겠지만 난을 처음 그릴 때에는 난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히 알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지. 그러다가 눈을 감고도 난을 칠 수 있을 때에 중요한 것은 난의 생김새가 아니다. 무엇이겠느냐.
자영이 석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당을 지날 때 보는 꽃과 길거리를 지날 때 보는 꽃을 떠올렸다. 들판에 핀 꽃과 흰 종이에 그린 꽃의 차이. 들판에 핀 꽃은 똑같이 느껴져도 종이의 꽃은 똑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하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단어 몇 개를 던져 놓았으니 얼마나 알아듣는지를 보겠다는 의중이었다. 자영은 시험에 들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이하응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낯선 대화였다. 집 안에서 여러 차례 이하응을 마주쳤지만 처음 보는 눈빛이었고 처음 받는 질문이었다. 자영은 이하응의 예리한 시선을 붉은 이마로 느끼며 묵란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묵란은 붓을 든 사람의 생각이옵니다. 난초는 붓을 든 사람의 생각 따라 피어납니다.
―오늘은 내가 너와 통했다. 문인화는 사물을 사실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사의(寫意)를 표현한다.
이하응이 석란을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는 다른 종이를 펼쳐 보였다.
―이것은 뿌리가 다 드러난 노근란이다. 네 눈에는 꽃이 먼저 보이느냐. 뿌리가 먼저 보이느냐.
―뿌리가 먼저 보입니다. 뿌리가 다 드러난 난초는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심정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흙을 멀리 하고도 피어나는 강한 꽃입니다.
―그래. 아름다움은 매혹적이지만 때로 괴롭다. 석란과 노근란 둘을 놓고 본다면 아름다움보다는 괴로움이 먼저 보인다. 음. 너의 영특함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르겠구나.
―죽어도 나리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경솔하구나. 죽음은 함부로 거는 것이 아니다.
이하응은 고소했다. 왕족으로 태어나서 숨죽이며 살아온 이력은 가슴속에 날 선 칼처럼 숨어 있었다. 웬만한 멸시는 멸시도 아니었고 웬만한 배신은 배신도 아니었다. 세상의 멸시와 배신을 수없이 겪은 자의 가슴은 갑옷처럼 두꺼웠다. 이하응은 가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증상을 매일 밤 꿈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평생 나리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자영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이하응이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도 과하게 머리를 조아리지는 않았다. 꽃대처럼 허리를 곧게 세우며 얼굴을 숙인 모습에서는 그 누구 앞에서도 구부러지지 않는 자존심이 보였다. 내가 너의 영특함을 죽일 정도로 옹졸하지는 않지. 집안이 몰락한 것이 영특함을 가리니 그나마 다행이구나. 이하응이 홀로 중얼거렸다.
―오만하구나. 어린 나이로 평생을 약속하다니.
자영은 이하응 앞에서 어떤 말도 필요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오직 이하응만이 생각하고 이하응만이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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