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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25131719
· 쪽수 : 416쪽
책 소개
목차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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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곧 그들의 앞으로 코스별로 식사가 도착했고, 세라는 무슨 맛인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음식을 먹었다. 성적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저녁이었다. 자레스는 그녀에게 반했다고 털어놓았고 세라는 퉁명스레 그 말을 무시했다.
그 이외엔 제법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자레스는 박식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이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신상을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여유 만만한 태도나 생활 방식, 생각 등을 경청했을 때 허세라기보단 상당한 부자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좋아하는 색깔, 음악, 취향 전부가 달랐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끊어질 듯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자레스는 세라의 솔직한 의견에 해박한 지식을 더했다.
시기는 달랐지만 그들에겐 영국에서 장기간 체류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자레스는 옥스퍼드 출신이었고, 세라는 런던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했다. 두 사람은 영국에서의 맛없는 음식들을 회고하며 밀라노의 축복받은 요리들을 찬양했다. 항구 제노바에서 공수되는 신선한 해산물과 알프스 산맥에서 생산되는 유제품들. 밀라노는 재료만으로도 축복받은 도시였다.
오래되어 향기로운 와인이 그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북돋았다.
어느새 두 시간의 식사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세라는 포만감으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자레스가 주문한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도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세라는 주량이 셌기에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그녀가 자레스를 이리저리 살피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프랑스인 맞아요? 분위기는 전혀 아닌데.”
“프랑스 사람 분위기가 어떤데?”
“뭐랄까,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프랑스 사람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분위기가 이질적인 것 같아요. 당신, 태어난 곳이 어디죠? 진짜 고향 말이에요.”
그는 에둘러 말했다.
“고향이라는 건 태어난 곳이긴 하지만 크게 의미를 부여할 바는 아니지. 발붙이는 곳이 집이고. 집이나 고향은 만들면 많아.”
고향이라는 말에 그의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어 보였다. 정확히 그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린 기분? 그래서 세라의 취기도 순식간에 증발했다.
즐거운 대화 상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기에 그들은 식사를 끝냈다. 그녀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그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럼 이제 호텔로 데려다 줘요.”
자레스는 물끄러미 세라를 응시했다.
“나랑 다시 술 마실 생각은 없나? 그대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 해줄 의향이 있는데.”
“그건 사양하죠.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전 내일 아침 일찍 나갈 생각이니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겠어요.”
“어디로?”
“관광이겠죠.”
세라는 말을 흘렸다.
그가 계산을 하고 나오자 조금은 찬 바람이 세라의 옷깃을 스쳤다. 자레스가 부른 차가 식당 앞에 대기해 있었다. 아랍계로 보이는 운전기사가 뒷문을 열었다. 세라는 차에 올랐고 곧 그들을 태운 차가 갈레리아로 향했다. 가는 동안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자레스는 생각에 잠겨 한 번씩 세라를 쳐다보았고, 세라는 차창을 바라볼 뿐이었다.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세라는 자레스 디드로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뻔히 알고 있었다. 성욕, 에로틱한 열정. 그런 것 따위 무슨 소용이람.
차는 어느새 호텔 근처에 다다랐다. 오래된 건물과 현대의 빌딩이 뒤엉킨 밀라노. 세라는 차가 속도를 줄이자 제 작은 백을 흔들었다. 가만히 뒷좌석에 앉아 있던 자레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라가 뒷문을 열려 했지만 차는 아직 멈춰 서기 전이다. 세라의 흐트러진 귀밑머리를 넘겨주는 자레스의 손가락이 섬세하게 그녀의 볼을 스쳤다.
찌릿한 감각이 얼굴을 달구게 했다. 그의 조금은 거칠어진 호흡 소리가 가까웠다. 그가 세라의 옆으로 소리 없이 움직였다. 손이 그녀의 몸을 잡아당기려 하고 있다.
키스하려는 거다. 세라는 그의 얼굴을 황급히 가방으로 가렸다.
세라의 얼굴 대신 막 가방에 키스하게 될 뻔한 자레스가 느긋하게 몸을 뒤로 빼냈다.
“비싸게 구는군.”
“자존심밖에 없는 여자거든요. 그러니 먼저 내릴게요.”
세라는 혼자서 씩씩하게 차에서 내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자레스가 뒷좌석에서 다급히 무언가 말을 하려 하자 세라가 먼저 선수 쳤다.
“아, 오늘의 대화와 비싼 식사 즐거웠어요. 자레스, 이건 팁이에요.”
세라는 가방을 열어 가진 현금을 정신없이 자레스의 손에 넘겨주었다. 자레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키스는 이걸로 대신하죠. 저녁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