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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29823047
· 쪽수 : 576쪽
책 소개
목차
1~21장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트러블 없이 지내려면 서로 협의가 좀 필요하겠지? 먼저, 짐부터 좀 내리고 하면 안 될까?”
생글거리며 대문 밖을 손짓하는 걸로 보아 짐꾼을 해 달라는 또 다른 표현인 것 같았다. 조금 전, 길바닥에 패대기쳐진 시래기처럼 처져 있던 게 누구였냐는 듯 여자의 얼굴엔 생기가 넘쳐났다. 변화가 죽 끓듯 하는 얼굴, 왠지 시작도 하기 전에 후회가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협의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내 조건은 하나뿐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사생활에 간섭하거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것. 그것만 명심하면 됩니다.”
“사생활 간섭? 영역 침범?”
그가 우주의 방을 손짓했다.
“아, 알았어. 내가 그 방에 들어갈 일이 뭐 있겠어. 오케이.”
“만약 지키지 못할 경우, 그 즉시 나가야 할 겁니다.”
“알았어.”
처음 인상 그대로 그는 싸가지 없이 따박따박 제 말만 늘어놓았다. 뭐, 다행히 조건은 생각보다 과한 요구도 아니었다.
“그런데, 절 언제 봤다고 반말입니까?”
“뭐? 어, 그게, 분명 우주 친구라고…….”
“제가 우주 친구지, 당신 친구는 아니지 않습니까?”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
“당신보다 어리면 무조건 반말입니까?”
뭐, 이런 거지 같은…….
“친동생은 아니래도 어쨌든 우주는 동생이고…… 동생 친구니까…….”
“싫습니다.”
횡설수설하는 순용의 말을 단박에 잘라 버리는 도윤이었다.
순용의 표정이 똥 씹은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순탄치 않은 갑질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난민이 될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해 줬으니 고마워해야 옳을 터였다.
“아, 알았어, 가 아니라 알았어요. 그럼 전 이삿짐 좀 계속 옮겨도 될까요?”
순용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존댓말을 쓰며 과장되게 빙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
그는 그녀의 말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휙,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용은 집 안으로 사라지는 시커먼 등판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누나로서, 어른으로서, 십분 싸가지를 발휘해 마음을 다스렸다. 물론, 그럼에도 타오르는 두 눈의 레이저를 감출 순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