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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6ㆍ7ㆍ80 풀뿌리 서민의 삶과 꿈)

민병욱 (지은이)
  |  
나남출판
2011-05-01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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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책 정보

· 제목 :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6ㆍ7ㆍ80 풀뿌리 서민의 삶과 꿈)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88930085694
· 쪽수 : 328쪽

책 소개

민병욱 기자는 1976년 신문기자 초년병 때 ‘민초’라는 별명을 얻었다. “풀뿌리 서민 편에 선 기자가 되라”는 당부를 들었고 그걸 기자 삶의 모토로 삼았다. 이 책은 옛날신문을 일차 자료로 삼고, 관련자나 취재 당사자를 만나 얘기를 듣고, 다시 책이나 영상자료를 들춰보면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풀뿌리 서민의 삶과 꿈을 복원하고 있다.

목차

차 례

글쓴이의 말 5

1부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파시여 다시 한 번 21
전국 어부, 8도 여인이 다 모이는 불야성
검푸른 파도에 목숨을 걸지만 만선만 되면 목숨 값을 두둑이 챙기는 사나이들. 한없이 거칠고, 뭍에의 그리움에 가슴이 단 사나이들이 평생을 품에 안고 사는 시장이 또 파시다.

서울의 마지막 굴뚝소제부 29
당신은 보신 적 있나요?
아아, 그나 나나 당시는 몰랐다. 징소리와 “뚫어∼!” 외침이 추억의 곳간에 들어가 더 듣고 싶어도 못 듣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게 될 걸 말이다.

“장독대를 없애라!” 38
시민아파트 건설 프로젝트
늙은 어머니 고무신 코가 닳을 정도로 오르내린 장독대는 바로 우리네 삶의 큰 터전이었다. 마음의 고향이고 믿음의 성소며 맛의 원천이고 살림 규모의 기준이었다.

칙칙폭폭 기차여행 47
어린이엔 꿈을 어른엔 추억을
가슴을 헤집듯 뭉클뭉클 뿜어 나오는 화통 연기처럼 도무지 주체할 길 없는 그리움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56
6070 바캉스의 추억
말로라도 자주 바캉스를 꿰다보니 정말로 바캉스가 사람들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60년대 중후반부터 인천송도나 부산해운대, 충남대천, 강릉경포대에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서울의 마지막 나룻배 65
동서남북을 이어라!
사공이 노를 저어 강심을 헤치는 그런 배도 아니었다. 중랑천 허공 위에 철선을 연결하고 그걸 잡아당겨 밀고 나가는 일종의 뗏목이나 나무상자 같은 배였다.

운동장 조회의 애환 75
땡볕에 픽픽 쓰러진 아이들
월요일 아침이면 으레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가 1시간가량 애국조회를 했다. 오전 8시 교내 벨이 쩌렁쩌렁 세 번 울리면 학급주번만 빼고 일제히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7080 반상회의 추억 85
이웃사촌 모여 ‘동태 살피기’
대한민국 671만 모든 가구에서 1명씩 참석하게 한 반상회가 1976년 5월 31일 저녁 6시 일제히 열렸다. 마을 공터에 횃불 켜고 멍석을 깔거나, 골목길 보안등 밑에 모여 연 반상회도 없지 않았다.

6080 다방의 추억 95
모닝커피에 ‘계란 동동’, 사장님 집무실
다방은 우리 삶의 중심에 있었다. 거리엔 ‘한 집 건너 하나’ 꼴로 다방이 있었고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행복 메신저’ 집배원 104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연 실어 나르기
군대 간 아들 소식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집배원 발걸음이 늦다고 역정을 냈다. 그러면서도 고마운 아저씨를 위해 감자와 옥수수를 삶았다. 마을 처녀 얼굴은 또 얼마나 붉게 타올랐는지…

2부 고달픈 삶의 최전선 현장

초가집을 없애라 113
아련한 추억? 가난의 상징!
초가는 언제나 한국인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누런 황토를 허리에 두르고 수수한 볏짚을 머리에 인 채
처마 안쪽엔 누런 멍석과 된장까지 넌 초가집.

번데기 식중독 사고 122
“뻔! 뻔! 뻔데기 사려~!”
마냥 춥고 배고팠던 시절, 아이들에게 번데기는 그야말로 별식 중의 별식이었다. 값도 비교적 싼 데다 학교 주변 행상들은 덤도 듬뿍 줘 아이들의 인기가 높았다.

70년대 연탄가스의 악몽 (1) 130
연탄 시절, ‘소리없는 죽음의 그림자’
단순히 연탄가스 중독 사고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게 말이야, 아이들 부모들은 다른 비닐하우스에서 잤다는 거야…”

70년대 연탄가스의 악몽 (2) 137
일가족 참사당한 방에서 수습 받은 기자들
한방에서 포개자던 일가족이 가스에 중독돼 숨진 사건이었다. 간호사는 “아마 대여섯 명이
포개어 자다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이너마이트에 촛불을? 145
77년 이리 화약열차 폭발사고 취재기
믿기지 않는 제보가 들어왔다. ‘북한군이 이리를 폭격했다!’ 처음엔 장난 전화라고 생각했다. 폭탄이 터진 건 분명했으나 어디서, 왜 폭탄이 터졌는지는 불분명했다.

“미싱은 잘도 도네” 154
저임에 울고 직업병에 골병들고…
이 한 몸 다 바쳐 나라 일군 산업 ‘역군’들. 눈물겨운 그들의 사투가 고속성장의 거름이 되었을까.

“오라이!!”…탕탕 164
시내버스 여차장의 애환
고달픈 삶의 최전선 현장이었던 ‘만원 버스’. 그곳에 아슬하게 매달린 여차장들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삥땅을 막아라 172
매일 알몸수색 굴욕 당한 슬픈 우리 누이들
고속 성장의 그늘 속에서 ‘기름밥’과 ‘센터’에 울던 우리들의 누이 동생들, 지금은 엄마, 할머니가 되었을 그녀들의 추억.

수마에 쓸려간 ‘난쏘공’ 182
77년 관악산 판자촌 산사태 취재기
집중호우로 집채가 넘어가고 가재도구가 파편이 된 참혹한 현장. 당시 취재기자의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해본다.

3부 시절이 하 수상하니…

“전 국민 차렷! 경례!” 193
국기 하강식과 극장 애국가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바삐 가던 시민들 제 자리에 ‘우뚝’. 극장도 거리도 고요한 광장으로 변했다.

설을 못 쇠게 하라 203
음력설은 옛날에나 쇠던 설!
요즘이야 설을 양력으로 쇠건, 음력으로 쇠건, 아니면 둘 다 쇠건, 몇 날 며칠을 쇠건 뭐랄 사람이 없다. 옛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양력 음력설을 다 ‘먹고 노는 게’ 싫었다.

위수령과 강제 징집 213
70년대 대학가의 아련한 상처
위수령 발동 첫날 군경은 대학에서 1,616명을 연행했다. 놀라운 것은 데모 주동자급 학생들은 검거 즉시 입영영장을 발부해 군대로 끌고 간 것이었다.

‘암흑기 방랑’ 변소 낙서 222
유신시대 냄새나는 변소에 이런 글이…
“유신철폐” 등 정부 비판에서부터 “신은 죽었다 ―니체, 니체는 죽었다 ―신”까지. 때론 진지하고 때론 재치 넘치는 70년대 ‘아날로그 낙서’.

경찰서 보호실 천태만상 230
칼잠 자던 보호실과 ‘30초 즉심’ 취재기
10평가량 냉골 마루방에 70~80명이 수용됐다. 바람을 막아줄 담요 한 장 없어 사람들은 그저 옷깃을 세우고 웅크려 앉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가는 사람을 왜 불러…” 238
70년대 ‘장발단속’ 풀스토리
경찰은 바리캉과 가위를 들고 긴 머리 젊은이들을 추격해 머리에 ‘고속도로’ 내고 반발하면 그 자리에서 즉결심판에 넘겼다.

4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폭탄주, 치명적 유혹의 시작 249
“양주는 독하므로 맥주에 씻어 먹는다”
폭탄주 ‘제조법’은 1980년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폭탄주가 “일찌감치 한국인 고유의 술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등장은 30년이 채 안 됐다는 얘기다.

요정 정치, 그 요지경 세계 257
밤의 정치, 그리고 강변로에서 총 맞아 숨진 여인
룸살롱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지만 요정의 맛 멋(?)을 따를 길이 없다. 한옥 깊은 곳 아늑한 방에 아리따운 한복여인을 끼고 앉아 판소리에 우선 흥을 돋우었다.

부끄러운 한국의 밤 267
‘깃발’ 따라온 ‘욕정의 동물’들
일본 관광단이 해외로 쏟아져 나오며 그 유별난 행태가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40~50명 대부대가 ‘깃발’ 든 인솔자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단체로 매매춘에 나서는 모습도 보도됐다.

해군 56함의 침몰 277
1967년 1월 19일, 오후 2시 34분
그들은 애초 출항한 진해기지로 영원히 귀대하지 못했다. 그들이 제 몸보다 아끼던 애함 56함과 함께였다.

왕따, 학교 폭력의 시작 287
“엄마, 학교가기가 무서워요”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은 역사가 오래 됐다. 18세기 서당에도 있었으니 50년 전이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학교 체벌의 기억 296
종아리 회초리부터 전체 기합까지
남자고등학교 같은 경우 나무를 깎아 다듬은 몽둥이 모서리에 ‘사랑의 매’ ‘군사부 일체’ 같은 문구를 써넣고 다니는 선생님도 있었다. 대개 생활지도교사나 체육교사들이 그랬다.

졸업식 뒤풀이 307
해방감과 광란의 사이
일부 졸업생은 축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시고 연탄재와 검은 구두약을 칠했다. 몇 학부형도 졸업생들이 던진 달걀과 밀가루에 옷을 버렸다.

망년회 혹은 광란의 밤? 317
70년대 ‘세밑’ 이야기
직장인들은 숙취로 깨질 듯 아픈 머리를 싸안고 다시는 과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퇴근 후엔 또 다음 망년회에 어김없이 참석했다.

저자소개

민병욱 (지은이)    정보 더보기
30년 〈동아일보〉 기자를 하면서 얻은 별명이 ‘민초’다. 식초를 친 듯 시큰하고 눈물 나는 기사를 잘 쓴다고 성 뒤에 ‘초’자를 붙여 선배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7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만의 기자가 탄생했지만 ‘초’를 성 뒤에 쓸 수 있는 기자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이른바 글 잘 쓰는 기자의 대명사로 별명을 얻었지만 ‘민초’는 풀뿌리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자라는 걸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閔醋이자 民草였던 것이다. ‘민초 통신’은 1970년대 중반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을 중심으로 민초가 겪은 한국사회의 겉과 속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원래는 네이버에 ‘옛날 신문-그 시절 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09년 7월부터 연재됐다. 20세기 후반 한국사회의 속살을 뒤집고 삶의 이모저모를 감성 터치로 소개해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 풍속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듯한 묘사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다시 역사에 새겨 넣은 작업이 됐다. ‘민초통신’은 아직 진행 중이며 추억의 삶의 현장은 날개를 타고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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