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만화 > 그래픽노블
· ISBN : 9788930110662
· 쪽수 : 7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렇듯,나에게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우리가 복합적으로 영위할 수 밖에 없는 삶의 다양한 국면들이 서로 얽혀 있는 공간, 여러 우여곡절과 자잘한 사건들로 풍요로운 공간, 요컨대 나의 지적 삶을 이루는 공간이었다. 울타리를 따라서 배어 나오는 산사나무의 향기, 오솔길 자갈 위를 거닐 때의 서걱거리는 소리, 강물 위 수초 주변에 생겼다가는 곧 터져 버리는 물거품... 이제는 길도 사라지고 그 길을 거닐던 사람들은 물론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져 버린 후에도, 너무도 소주한 이런 인상들이 무수한 세월의 질곡을 가로질러 되살아나는 때가 있었다.
이 책을 옮기면서 번역자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두 번째 사항은 과연 이 책을 어떤 독자층이 읽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꼭 읽고는 싶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번역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도, 이 작품은 우리 나라 대학의 학부과정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웬만한 불어 독해력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역자 해설)
여름날 저녁, 평온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사람들이 급히 몸을 피할 때, 나는 홀로 비를 맞으며 황홀경에 잠겨 메제글리즈 쪽을 생각해 보곤 했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로질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풍기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이렇듯, 내가 밤에 잠이 깨서 아침이 될 때까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는, 콩브레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나 에전에 지낸 슬픈 불면의 밤들을 기억하거나, 아니면 최근에 차 한 잔의 맛(콩브레에서는 '향기'라고 불렀는데)에 의해 되살아난 무수한 과거의 나날들을 돌이켜보면서 지내게 되었다.
잠이 깬 후 아침이 가까워지면, 내가 정말로 잠에서 깨어났는지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아도 되었다. 전날 내가 어느 방에서 잠이 들었는지를 기억해내, 잠이 깬 후 어둠 속에서도 내 주위로 방의 윤곽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내가 어둠 속에서 그려 본 처소의 기억이 과거에 지냈던 무수한 처소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바로 전날의 그 자리를 되찾아 겹쳐지고 나면, 그 밖의 다른 모든 처소들은 커튼 위로 비집고 들어오는 희미한 아침 햇살에 쫓기어 이내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