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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1006551
· 쪽수 : 448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부두 끝에 있던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젊은이는 언덕에서 내려오는 비탈길 중턱에 서서 오고 가는 범선과 요트 증기선들, 어선, 시끄러운 예인선에 묶여 질질 끌려가는 검은 석탄 바지선들로 항적이 만들어지고 있는 만을 바라보았다. 정자 안의 숙녀도 같은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애덤스 요새의 회색 요새 너머로 길게 드리운 석양이 수많은 불꽃으로 부서졌고, 그 광채는 라임 락과 해안 사이 해협을 지나가는 작은 범선의 돛으로 번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아처는 몬테규가 자신이 방안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에이다 다이어스의 리본에 입을 맞추는 《방랑자》의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는 모르고 있어 - 짐작도 못했을 거야. 그녀가 내 뒤로 다가온다면 내가 알아채지 못할까?’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갑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돛단배가 라임 락 등대를 지날 때까지 그녀가 돌아보지 않는다면 되돌아갈 거야.’
배는 썰물을 타고 차츰 멀어져갔다.
몇 분 동안 그가 어둠 속에 몸을 내밀고 있자 메이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뉴랜드! 제발 창문 좀 닫아요. 그러다 독감이라도 걸려 죽겠어요.”
그가 창틀을 내려서 닫고 돌아섰다. ‘독감에 걸려 죽는다고!’ 그가 그 말을 되뇌었다. 그는 ‘그렇지만 나는 이미 독감에 걸렸소. 나는 죽은 몸이오 -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소’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내게는 위로 올라간 것보다 여기 앉아 상상하는 게 더 현실 같군.” 갑자기 그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현실의 마지막 그림자가 희미해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앉아 있었다.
그는 점점 더 짙어지는 어스름 속에서 발코니로부터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벤치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마침내 창문을 통해 불빛이 흘러나왔고 잠시 후 남자 하인이 발코니로 나와 차양을 올리고 덧문을 닫았다. 그것이 자신이 기다렸던 신호이기라도 한 것처럼 마침내 뉴랜드 아처는 천천히 일어나서 혼자 호텔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