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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1007831
· 쪽수 : 248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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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하지만 말이야, 바닷가에 아무하고나 올 수는 없는 거잖아. 너도 혼자선 올 생각을 못했을 거고. 인생에서 지금 같은 십대 시절에 함께하기 가장 좋은 상대는 역시 단짝 친구니까.”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덧붙였다. “내겐 네가 그런 친구야.” 그러고 나서 그가 누운 모래언덕은 잠잠해졌다.
그건 무척 대담한 말이었다. 데번 같은 곳에서는, 그처럼 진지하게 감정을 드러내놓는다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그 역시 내게 최고의 친구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가 힘들게 한 말을 돌려주었어야 했다. 그러려고 했다. 거의 그렇게 말할 뻔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나를 주저하게 했다. 어쩌면 나를 멈춘 것은 이성보다 더 깊이 숨겨진 감정, 지나치게 진실된 그런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네가 나무에서 느꼈던 것은 그저 맹목적인 충동이었지. 너 자신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거야, 내 말이 맞지?”
“그래, 맞아, 그랬어. 그런 거였어. 하지만 넌 정말로 그렇게 믿을 수 있어? 그렇게 믿을 수 있겠어? 나 자신조차도 네가 그걸 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없는데.”
“난 믿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나도 가끔은 완전히 확 돌아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뻔하니까. 난 널 믿을 수 있어, 네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그게 맞는 거야. 그냥 넌 무엇에 홀린 거야. 정말로 내게 나쁜 감정이 있었던 게 아냐. 네가 항상 날 미워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고. 그건 전혀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어.”
“그래, 하지만 네게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하면 증명할 수 있을까, 피니? 어떻게 하면 될지 말해줘. 그건 다만 내 안의 어떤 어리석음이었어. 내 안에 있던 광기, 맹목적인 무엇이었어. 그게 다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턱을 꽉 악물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으려는 듯 눈을 꼭 감은 채. “난 널 믿어. 이제 괜찮아. 난 널 이해하고 널 믿어. 넌 이미 내게 증명해 보였고, 난 널 믿어.”
“수술 도중에 심장이 그냥 멈춰버렸어. 아무 예고도 없이 말이다.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하구나. 아니, 가능은 하지. 가능한 설명은 단 하나뿐이야. 내가 뼈를 움직일 때 그의 골수 일부가 혈류로 흘러들어간 게 분명해. 곧바로 심장까지 흘러가서 거길 막아버린 거야. 그것만이 가능한 설명이란다. 그것뿐이야. 물론 위험은 있었어. 항상 위험성은 존재해. 수술실에서는 위험성이란 게 다른 장소에서보다 더 공식적일 뿐이지. 수술실, 그리고 전쟁터에서는.” 그 순간 나는 그의 자제력이 무너져버리는 걸 느꼈다. “왜 이런 일이 너희에게 이토록 빨리 일어나야 하는 거냐, 이 데번 같은 곳에서.”
“그의 골수가…….” 나는 두서없이 되풀이했다. 그 말의 의미가 마침내 내 마음속을 관통했다. 피니어스는 죽었다. 그의 골수가 혈류를 타고 심장까지 흘러가는 바람에.
나는 피니를 위해 울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까지도. 심지어 보스턴 교외의 빽빽이 들어찬 그의 가족 묘지에 그가 누운 관이 내려지는 걸 지켜보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것이 나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장례식에서는 누구도 울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