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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1009859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소띠 엄마의 워낭소리
안태 고향 심심산골 신촌(新村)
어머니가 팔뚝에 그려 준 초승달 무늬
태곳적 신비 간직한 신촌의 산과 들로
여섯 살 어린 소년이 소를 먹일 때
대구 수창(壽昌)국민학교 유학
일제강점기 말 전환기 신촌에서 대구로 이주(移住)
아버지는 만주(滿洲)로, 어머니 혼자 식솔 거느려
나의 전학증(轉學證) 보고 실망해 울던 어머니
‘대구 10·1 폭동’ 때 “대세 따르라”던 어머니 말씀
대구상고(大邱商高) 합격 때 기뻐하던 어머니
6·25전쟁 때 포위된 대구 시민들의 피란 소동
수창동 신축 한옥 기와집 이사 후 기뻐한 어머니
‘昌成’ 해체 후 서울로 올라오신 어머니
어머니와 신촌 방문하던 날 까치 소리 요란해
치매 고비로 어머니 건강 쇠잔해져
노년의 고독한 생활에 지친 어머니
한 많은 인생살이 뒤로하고 하늘나라로
80년 전 어머니 꽃가마 타고 시집오던 산길 걸어 보니
2부
어머니 사랑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젊은 세대의 어머니 사랑과 효심
어머니 사랑, 가족 사랑이 행복의 근원
저자소개
책속에서
당시 어머니들은 동생이 출생할 때까지 아이가 젖을 떼지 못해 젖에다가 ‘금계랍’(일제강점기 말라리아 전염병 치료약)이란 쓴 약을 발라 젖을 못 먹게 하는 경우가 흔했다. 나는 네 살 터울인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젖을 먹었다. 어머니는 나에게서 젖을 떼려고 젖에 쓴맛이 나는 금계랍을 발라 젖을 못 먹게 하겠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식에게 젖을 물리고 품에 안는 것이 좋았던지 굳이 모질게 젖을 떼려고 하진 않았다. 어머니는 젖을 물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이 애가 이렇게 커 가지고 창피하게 젖을 먹다니 금계랍이라도 발라야 되겠다”라고 하면서도 실제론 그렇게 하진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일제강점기에 어머니는 식량 부족으로 달성공원 근처에서 캐 온 비름나물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영양 부족으로 고운 얼굴에 버짐이 피어도 자식들에게 내색 않고 꿋꿋이 사셨다. 수창동으로 이사하고 수년 후 어느 날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간단한 건강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아픈 데가 없다면서 끝내 건강진단을 받지 않았다.
창성의 부도로 어머니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한때 까무러치고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여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백운동 신촌에서부터 낯선 대도시 대구 생활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남편과 동고동락하면서 안 먹고 안 쓰고 뼈 빠지게 노력해 이룩한 전 재산을 속절없이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 비통함과 상실감,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70대 가까웠던 어머니는 10여 년간 동생을 위해 점심 저녁 식사를 봉덕동에서 월배까지 해다 나르고 낮에는 산더미같이 쌓인 먼지투성이 긴 감천 쪼가리를 하나하나 주워 모아 팔아 그 돈을 가용에 쓰는, 그야말로 몸에 밴 근검절약과 내핍 생활을 하셨다. 동생과 창성의 발전을 위해서 그렇게도 근검절약하던 어머니의 서글픈 마음과 허탈감을 어디에다 호소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