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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일반문학론
· ISBN : 9788931009903
· 쪽수 : 544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보이지 않는 정치의 귀환
1. 길 없는 길 - 미래 이후의 미래
2. ‘길 없는 길’의 행위자로서 특이성과 보이지 않는 타자
3. 삶권력과 죽음정치 - 유혹의 권력의 두 얼굴
4. 절망을 껴안고 권력과 동거하기 - 절망과 저항의 양가성
5. 벌거벗은 생명과 벌거벗은 타자
6. 저항을 위한 교섭의 위치로서의 벌거벗은 타자
7. 죽음정치의 시대와 타자를 향한 ‘포말의 의지’
8. 죽음정치와 죽음정치적 노동
9. 존재론적 정치와 에로스 효과로서의 민중봉기
10. 아직 끝난 게 아니다 - 공감의 유전자와 원효의 존재의 비밀
제2장 유혹의 권력과 죽음정치에 대한 존재론적 대응
1. 유혹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2. 유혹의 권력 시대의 죽음정치
3. 쇼크 독트린에 대응하는 트라우마의 기억
4.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양가성의 진리
5. 죽음정치와 낯선 두려움, 그리고 식민지의 유민
6. 식민지적 죽음정치와 기민으로서의 이주노동자
7. 국가서사의 허구성을 파열시키는 기민/난민의 트라우마의 기억
8. 트라우마의 기억과 에로스의 기억, 그리고 순수기억
9. 죽음정치의 역사와 디세미네이션의 미학
제3장 식민지 시대의 유민의 발생과 은유로서의 디세미네이션
1. 1920년대의 유민의 발생과 디세미네이션
2. 식민지 민족의 양가성과 디세미네이션의 미학
3. 집단적 민중의 움직임과 산포된 존재의 네트워크
4. 식민지 근대에 대항하는 디세미네이션의 미학
제4장 산업화 시대의 내부의 유민과 디세미네이션의 미학
1. 개발주의 시대의 유민과 내부의 디아스포라
2. 전태일의 존재론적 저항 - ‘낯선 두려움’에서 ‘마음의 고향’으로
3. 은밀성의 영역의 난민과 유민화된 민중
4. 죽음정치적 노동자들의 연대와 존재론적 대응
5. 집을 잃은 사람들의 낯선 두려움과 벌거벗은 타자
6. 초국가적 맥락에서의 죽음정치와 존재론적 대응으로서의 디세미네이션의 연대
제5장 삶권력과 자본주의의 존재론적 운동
1. 삶권력과 죽음정치의 관계와 무의식
2. 자본의 자기갱신운동과 삶권력
3. ‘은유로서의 화폐’의 무의식과 ‘은유로서의 네이션’의 무의식
4. 〈운수 좋은 날〉과 두 개의 무의식 - 타자의 위치에서의 동요
5. 《삼대》의 대화적 무의식과 주체의 동요
6. 《환영》에 나타난 감정과 성의 상품화 - 후기자본주의의 《자본론》
제6장 삶권력과 죽음정치에 대항하는 순수기억의 창조적 존재론
1. 무의식에 작용하는 삶권력과 순수기억의 대응
2. 습관기억의 억압과 순수기억의 혁명 -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3. 화폐의 무의식과 순수기억의 무의식
4. 식민지의 죽음정치에 대한 순수기억의 대응 - 백석의 시
5. 순수기억의 시간과 영화 - 김기덕의 《빈집》
6. 잉여향락의 공간과 순수기억의 시간 - 김기덕의 《시간》
7. 순수기억의 정치화
8. 순수기억과 상처의 기억
9. 베르그송의 순수기억과 라캉의 대상 a
10. 잃어버린 ‘순수기억’을 찾아서 - 권여선의 《레가토》
제7장 유혹의 권력과 미래 이후의 미학
1. 유혹의 권력과 낯선 두려움
2. 규율사회에서 유혹사회로
3. 자본의 가속도와 유혹의 권력 - 송경아의 〈엘리베이터〉
4. 유혹사회의 공간적 폐쇄성 - 배수아의 우울의 미학
5. 성장 없는 성장소설과 죽음정치에 대한 ‘슬픈 응수’
6. 배수아 소설에 암시된 유혹사회 속의 죽음정치
7. 유동체에 대한 열망과 은유 - 베르그송과 마르크스, 그리고 원효
8. 유동체의 회복 - 춤과 참선
9. 선시와 리얼리즘의 결합 - 송경동의 시
10. 부서진 디세미네이션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11. 구조화된 불평등성과 감성의 분할, 그리고 혐오발화
12. 혐오발화와 ‘계급적 인종’
13. 혐오의 은유와 미학의 은유
14. 물밑에 있는 타자와 은유로서의 정치
15. 길 없는 길과 미학적 은유
16. 분노의 계보학
17. 길 없는 길과 미래 이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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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절망을 시간의 차원에서 말하면 미래의 말소이다. 비판적 담론이 소멸된 1930년대 중반, 작가 이상은 “희망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인다”고 되뇌었다. 오늘날의 절망적인 정치의 해체는 결국 희망의 말소이자 미래의 상실이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래의 한 쪽이 붕괴된 상황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TV나 신문에서 미래는 주로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발전 쪽에서만 말해진다. 미래학자들이란 연성화된 경제전문가들이거나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누구도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개발은 딕셔너리 넘어가듯 계속되지만 그 페이지들에는 또 다른 미래라는 그림이 말소되어 있다.
우리는 이 같은 타자의 상실이 미래의 붕괴의 증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타자에 대한 혐오는 병리화된 미래의 징후이다.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발전만을 미래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타자와 사건을 대면할 때의 존재방식 및 사회의 변화의 필연성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미래로 질주하는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가 쏟아낼 신세계의 잉여향락을 타자들이 훔쳐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의 둔화와 수출의 감소는 모두 그들 탓이다. 과거에 파시즘은 유대인들이 대중들의 향락을 훔쳐가고 있다고 그들을 혐오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과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는 타자들을 혐오하게 만들고 있다.
삶권력과 죽음정치의 구성적 결합은 1920년대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문화정치는 어둠 속의 ‘묘지’였던 1910년대 식민지 자본주의를 빛의 영역으로 이동시킨 삶권력의 전략이었다. 이광수는 《재생》 에서 “연애와 돈이 정신을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식민지 자본주의가 지식인과 소시민에게 삶권력적 유혹으로 침투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트랜스내셔널한 권력으로서 식민지 자본주의는 최대의 이윤을 짜내기 위해 농민과 노동자들을 과도한 착취로 죽음에 유기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지옥’을 경험하고 있었고 농민들은 소작권을 빼앗긴 채 유이민으로 떠돌아야 했다. 문화정치라는 삶권력은 자본주의적 개발을 전제로 한 것으로 지식인과 소시민에게는 유혹이었지만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죽음정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