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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31010299
· 쪽수 : 208쪽
책 소개
목차
뫼르소, 살인 사건
옮긴이의 글
리뷰
책속에서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지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걸세. 반대로 난 같은 얘기를 너무 많이 곱씹은 탓인지 이젠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군. 그 일이 있은 지 반세기도 더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 사건은 분명히 일어났었고 그에 관한 얘기도 많았어.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그 얘기를 하고 있지만, 단 한 명의 망자(亡者)만을 떠올린다네. 뻔뻔하지 않나. 죽은 사람은 엄연히 둘이었는데 말이야. 그래, 둘이라니까. 한 명을 빼먹은 이유가 뭐냐고? 그야, 첫 번째 사람은 얘기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지. 그것도 얼마나 잘했던지, 자기의 죄를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네. 반대로 두 번째 사람은 가난한 무식쟁이였지. 신이 그를만든 것도, 단지 총알받이가 되어 한낱 먼지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니까. 이름 하나 가질 여유조차 없었던 익명의 존재였던 거야. 한마디로 말해주지. 두 번째 망자, 피살당한 그자가 바로 내 형이라네. 형의 흔적이라고는 남아 있는 게 없어. 형을 대신해 여기 이 바에 죽치고 앉아 있는 나 말고는.
형과 살인자. 살인자에 관해 우리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 그는 엘 루미, 즉 ‘이방인’이었거든. 동네 사람들이 신문에 난 그의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긴 했지만, 우리에게는 그 얼굴이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어. 우리 수확물을 죄다 훔쳐간 덕에 살이 뒤룩뒤룩 찐 다른 프랑스인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거든. 입술 사이에 삐딱하게 문 담배 말고는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지. 그의 얼굴은 금세 그의 동포들의 얼굴과 혼동되며 잊혔어. 엄마는 수많은 묘지에 다 가봤고, 형의 옛 친구들을 채근했고, 살인자와도 얘길 나누고 싶어 했지만, 그는 감방 깔개 밑에서 발견한 신문 조각하고만 대화를 할 뿐이었어. 다 헛수고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