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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 ISBN : 9788931011432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우리’가 아닌 ‘너’ 와 ‘나’ 의 가족
1부 남편의 말기 암 선고가 왜 내 자존감을 떨어뜨렸을까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의 함정, 환장할 ‘우리’의 탄생
가족과 교류를 끊고 지내겠다는 정치인과 이를 환영하는 사회, 괜찮을까
아이 없이 둘만 사는 것도 가족이야? 하나의 ‘정상’과 다양한 ‘비정상’
아이 없이 사는 걸 그토록 두려워한 이유는 ‘비정상’ 가족이라는 낙인
이혼한 친구와 내가 이민을 원하는 건 주류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잘라라’ 주문을 외우며 다니던 직장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위해 각자도생하는 ‘우리’
불완전한 가족을 탈출하라, 이혼을 권유하는 자상한 충고
가족은 화목하고 완전한 것이라는 환상의 역설
갈등에 대한 죄책감 증후군
서로를 잘 안다고, 알아야 한다고 믿는 ‘우리’
공감이라는 허상에 대해
직장 환영 회식에서 울음을 터뜨린 외국인, 다름을 비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내가 해야 할 효도를 배우자가 대신할 수 있을까
2부 ‘우리’에서 ‘나’를 분리하다
한국에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일인가
아이에게 해야 할 사과를 아이 엄마와 주고받은 나,
신체발부수지부모 가족관의 마력
대학 중퇴라는 자식의 갑작스런 결정을 그녀가 존중할 수 있었던 건
가족은 ‘나’의 선택과 동의로 만든 공동체
남편의 투병을 ‘우리’가 아니라 나 ‘개인’의 일로 만들다
나는 아내인가 며느리인가 간병인인가
외국인이 솔깃해하는 꿀 팁, 한국에서는 상대방 이름을 몰라도 돼!
아내이고 며느리이고 간병인인 나, 그 뒤에 있는 ‘나’를 찾다
어려움에 처한 자식을 두고 여행 떠나는 엄마, 덕분에 자신감을 얻다
가족에게 힘이 되려면 ‘너’와 ‘나’로 분리하는 일부터
‘우리’의 자아도취적 만족이 아니라 ‘너’와 ‘나’의 진짜 사랑
가족이란 ‘남’에 불과하던 사람들을 ‘너’로 만드는 연금술사
엄마의 사랑은 ‘피’에서 나올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미신의 실체, 한국의 혈연관계는 핏줄이 아니다
아버지와 가족은 다르다
WEIRD 문화권에서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놀다가 새벽녘에 들어온 남편, 화를 낼까 말까
3부 ‘우리’가 아니라 ‘너’와 ‘나’의 연대를 위해
가족이 마지막 보루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정 폭력
가정 폭력과 사생활, 사생활은 ‘개인’의 것이지 가족 ‘집단’의 것이 아니다
구시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살림에 대한 편견
요즘 청년이 결혼을 두고 이것저것 따지는 이유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젊은이, ‘개인’의 등장
결혼 대신 동거를 권하는 부모, 북유럽 보편 복지가 지향하는 바는 평등이 아니라 개인주의
저출산 현상은 인구가 아니라 생산성의 문제
인구가 정 문제라면, 미혼 부모와 입양에 대한 인식 개선부터
‘공동체’에서는 아무도 양보하지 않는다
양보와 배려의 첫 번째 대상은 나 자신
배려보다 중요한 건 자기 의사 표현 능력
애덤 스미스의 이익 추구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연대를 위한 개인주의
한국에서 장애인 인권이 잘 개선되지 않는 이유
‘Mother knows best’의 진화 ‘ The olders knows best’, 꼰대의 등장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외면하는 갈등
가족의 대화는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공론의 장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부부의 건강한 싸움
미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겠다······.' 남편과 투병 생활을 할 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 만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 암이 발생한 장기의 상태도 중증이지만, 다른 장기까지 퍼졌다면서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잘 와 닿지 않았다. 암은 그저 드라마에서 보거나 남들 얘기인 줄 알았기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충격적인 일인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심지어 하루 종일 남편과 함께 지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어수룩했는가. 그 무게는 천천히 조금씩 나를 짓눌렀고, 투병하는 남편 곁에서 나는 평소 잘 인지하지 못한 가족과 자신에 대한 생각이 그 무게를 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투병 생활도 힘들었고 죽음이 엄습하는 것도 무서웠으며, 미래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루저(패배자나 불량품 같은 낙오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루저가 된 것 같았을까? 그 일이 발생한 원인에 내 잘못은 없었다. 무엇보다 배우자가 큰 병에 걸린 건 내 존재 가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에서 ‘나’를 분리하는 시도는 의식적 측면의 내적 변화다. 따라서 투병하는 남편과 그 옆에서 투병을 돕는 내 상태는 여전했다. 경제적 사정도 마찬가지다. 외적으로 변하는 건 전혀 없었다. 내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 남편의 투병을 ‘우리’, 즉 가족의 일이라기보다 ‘나’의 일로 받아들였다. 비록 내 의지나 잘못으로 겪은 일이 아니지만, 무력한 피해자로서 어쩔 수 없이 불행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내 삶에 등장한 내 일로, 그 일에 대한 내 책임을 수용하려고 했다. 그러자 나를 무겁게 짓누르며 벼랑으로 내모는 것 같은 일이 두렵지 않았고, 점점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 듯했다. 나를 짓누른 건 그런 일이 아니라 어쩌면 그 일에 내 책임은 없다며 피하고 도망가려는 내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가족 안에서 ‘우리’가 아닌 ‘나’로 거듭나며 삶의 주인 자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