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31582833
· 쪽수 : 352쪽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새로운 판으로 인사드리며
축사|대한민국 독도의 출판을 축하하며
추천사|근현대의 독도 문제에 새로운 발견과 전략으로 접근한 책
서문|경술국치 100년째 되는 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논리는 죽었다
제1부 경술국치까지의 독도
1장 독도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2장 메이지 정부와 독도
3장 서양인의 울릉도·독도 발견
칼럼1|시볼트와 일본
4장 ‘수로지’와 1880년 이후의 독도
칼럼2|전통적인 명칭이 기재된 지도들
5장 일본의 독도 강제 편입과 고종
제2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도 문제
6장 독도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7장 한일 간 독도 논쟁 본격화와 평화선
8장 한일협정에 나타난 독도
9장 독도에 대한 전략적 고찰
참고문헌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지금 보니 한시라도 등한히 내버려 둘 수 없고 한 조각의 땅이라도 버릴 수 없다.”
-『고종실록』19권, 19년(1882년) 6월 5일조
(중략) 일본의 치외법권을 인정한 ‘조일양국통어규칙’ 체결로 인해 불법 행위를 해도 기본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 일본인들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횡포가 갈수록 심해졌다. 이 규칙은 주로 일본인을 위한 규칙이었다. 당시 조선인은 일본 연해까지 어로 활동을 하러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889년에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일양국통어규칙’은 결국 일본인들의 불법 어로 활동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불평등 규칙은,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인 줄 알면서도 대한제국에 통보하지 않은 채 독도에서 강치 잡이를 계속한 나카이 요자부로와 같은 사람들을 등장시켰고, 1905년에 일본은 나카이 요자부로의 불법 행위를 오히려 무인도에 대한 선점 행위로 둔갑시켜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그러므로 1905년에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것은 ‘조일양국통어규칙’의 치외법권 조항을 악용한 불법행위다.
- 1부 1장 독도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중에서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 군도를 울도군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이규원과의 대화에서는 독도를 우산도 혹은 송도로 불렀지만,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는 독도의 명칭을 석도(石島)로 표기했다.
(중략) 울릉도 이주 정책으로 인해 새로 울릉도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이 독도를 돌섬으로 불렀고 돌섬을 한자로 표기하면 석도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1880년 이후 우산도라는 독도의 명칭은 역사에서 사라졌고 돌섬이 독섬으로 변했고 결국 독도로 정착되었다.
(중략) 이렇게 하여 대한제국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관보에 실어 석도, 즉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선포했다. 이것은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현에 강제로 편입하기 5년 전의 일이었다.
- 1부 1장 독도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