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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32028033
· 쪽수 : 136쪽
책 소개
목차
1. 새벽의 약속
2. 군대에서 외교계로
3. 외교계에서 영화계로
4. 내 삶의 의미
옮긴이의 말_로맹 가리, 세상을 홀린 마법사
로맹 가리 연보
리뷰
책속에서
내 삶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라고 하시는데,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군요.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살았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삶을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삶인 양 기억하곤 하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사적이며 일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나를 이끌었고, 어떤 면에서는 나를 속여 넘겼지요.
나는 문화를 네 번이나 갈아탔습니다. 러시아 문화에서 폴란드 문화와 문학으로 건너왔고, 열네 살 때는 프랑스 문화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10년을 살았고, [……] 카멜레온을 빨간 양탄자 위에 올려놓으면 빨간색으로 변합니다. 녀석을 초록 양탄자 위에 놓으니 초록색으로 변하고, 노란 양탄자에 놓으니 노랗게 변하고, 파란 양탄자에 놓으니 파랗게 변했는데, 알록달록한 스코틀랜드 체크무늬 천에 올려놓으니 녀석이 미쳐버리더라는 얘기였습니다. 드골 장군은 껄껄 웃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네 경우엔 미치지 않고 프랑스 작가가 된 거로군.”
어머니의 거창한 구상은 장차 아들이 외교관이 되어 외국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것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외국인혐오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게다가 이 혐오주의는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요―러시아 출신으로 아직 귀화조차 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거는 이런 기대는 그야말로 해괴한 몽상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는 걸 자주 들었지요. “넌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프랑스 대사가 될 거다.” 이따금은 몹시 곤혹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분이라 계단에서 이웃과 말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여덟 살인 나를 데려가 밖에 나와 있던 이웃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요.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거예요. 위대한 프랑스 작가가 될 거라고요.” 나는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지요. 우리가 아직 폴란드 동부의 작은 마을에 살 때의 일이니 이런 일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