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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오칠언절구

두보 오칠언절구

두보 (지은이), 강민호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2018-03-26
  |  
14,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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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오칠언절구

책 정보

· 제목 : 두보 오칠언절구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88932030876
· 쪽수 : 316쪽

책 소개

대산세계문학총서 148권. 두보의 절구 138수를 엮은 책이다. 절구는 대중가요의 가사에 가까운데, 유행과 인기에 따라 보편적인 정서를 따르다 보니 다루는 제재가 한정되고 방식도 유형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두보는 굳어진 유형을 거부하고 자기 뜻대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목차

I. 오언절구(五言絶句)
卽事 ∙ 춤추는 여인을 보고 | 因崔五侍御寄高彭州一絶 ∙ 최오시어를 통해 고적에게 절구 한 수를 부치다 | 絶句 ∙ 절구 | 王錄事許修草堂貲不到聊小詰 ∙ 왕녹사가 초당 보수할 자금을 허락해놓고 부치지 않아 그저 조금 꾸짖다 | 絶句二首 ∙ 절구 두 수 | 絶句六首 ∙ 절구 여섯 수 | 絶句三首 ∙ 절구 세 수 | 答鄭十七郞一絶 ∙ 정십칠랑에게 절구 한 수를 답하다 | 武侯廟 ∙ 제갈량의 사당 | 八陣圖 ∙ 팔진도 |復愁十二首 ∙ 다시 근심하다(12수) | 歸雁 ∙ 돌아가는 기러기

II. 칠언절구(七言絶句)
贈李白 ∙ 이백에게 드리다 | 虢國夫人 ∙ 괵국부인 | 蕭八明府實處覓桃栽 ∙ 소실 현령에게 복숭아 묘목을 구하다 | 從韋二明府續處覓綿竹 ∙ 위속 현령에게 면죽을 구하다 | 憑何十一少府邕覓榿木栽 ∙ 하옹 현위에게 부탁하여 오리나무 묘목을 구하다 | 詣徐卿覓果栽 ∙ 서경에게 가서 과일 묘목을 구하다 | 憑韋少府班覓松樹子栽 ∙ 위반 현위에게 부탁하여 소나무 묘목을 구하다 | 又於韋處乞大邑瓷碗 ∙ 또 위반에게 대읍의 자기 그릇을 구하다 | 絶句漫興九首 ∙ 흥이 나는 대로 쓴 절구 아홉 수 | 春水生二絶 ∙ 봄물이 불어나다(2수) | 少年行二首 ∙ 소년의 노래(2수) |
少年行 ∙ 소년의 노래 | 贈花卿 ∙ 화경에게 주다 | 李司馬橋了承高使君自成都回 ∙ 이사마의 다리가 완성되었을 때 고사군이 성도에서 돌아오다 | 江畔獨步尋花七絶句 ∙ 강가에서 홀로 걸으며 꽃을 찾다(7수) | 重贈鄭鍊絶句 ∙ 정련에게 절구를 거듭 드리다 | 中丞嚴公雨中垂寄見憶一絶奉答二絶 ∙ 엄무 중승께서 비가 오는 가운데 날 생각해주는 절구 한 수를 부쳐주셨기에 절구 두 수로 답하다 | 謝嚴中丞送靑城山道士乳酒一甁 ∙ 중승 엄무께서 청성산 도사의 마유주 한 병을 보내주신 것에 감사하다 | 三絶句 ∙ 절구 세 수 | 戲爲六絶句 ∙ 장난삼아 지은 여섯 절구 | 惠義寺園送辛員外 ∙ 혜의사 밭에서 신원외를 전송하다 | 答楊梓州 ∙ 양재주에게 답하다 | 得房公池鵝 ∙ 방공 연못의 거위를 얻다 | 官池春雁二首 ∙ 관가 연못의 봄 기러기(2수) | 投簡梓州幕府兼簡韋十郞官 ∙ 재주 막부에 편지를 부치며 아울러 위 낭관에게 편지를 전하다 | 戲作寄上漢中王二首 ∙ 장난삼아 지어 한중왕께 두 수를 부치다 | 黃河二首 ∙ 황하 두 수 | 絶句四首 ∙ 절구 네 수 | 奉和嚴鄭公軍城早秋 ∙ 정국공 엄무의 「군성의 초가을」 시에 받들어 화답하다 | 三絶句 ∙ 절구 세 수 | 存歿口號二首 ∙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즉흥시 두 수 | 虁州歌十絶句 ∙ 기주의 노래(10수) | 解悶十二首 ∙ 근심을 풀다(12수) | 承聞河北諸道節度入朝歡喜口號絶句十二首 ∙ 하북의 여러 절도사가 입조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절구 열두 수를 쓰다 | 上卿翁請修武侯廟遺像缺落時崔卿權夔州 ∙ 최경 옹에게 글을 올려 무후묘 유상이 결손된 것을 수리할 것을 청하였으니,당시 최경은 기주자사를 대리하고 있었다 | 喜聞盜賊總退口號五首 ∙ 도적이 다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다섯 수를 쓰다 | 漫成一首 ∙ 멋대로 한 수를 짓다 | 書堂飮旣夜復邀李尙書下馬月下賦絶句 ∙ 서당에서 음주를 마쳤는데 밤에 다시 이상서를 불러 말에서 내리게 하고 달 아래서 절구를 읊다 | 江南逢李龜年 ∙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다

옮긴이 해설 · 실패한 노래, 새로운 노래―두보 절구의 특징과 의의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저자소개

두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 시단을 대표하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다. 그는 본래 유가(儒家)로서 정치에 몸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결국 시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두보가 처한 시대는 당나라가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다가 안사의 난으로 제국의 붕괴 위기를 맞았던 때였다. 그의 생애는 크게 보아 755년에 발발한 안사의 난을 중심으로 전·후반으로 양분된다. 안사의 난 이전, 그는 당대의 다른 시인들처럼 독서와 유람으로 견문을 쌓아 착실히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했다. 735년 진사 시험의 낙제는 그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재차 유람에 나서는 한편 이백, 고적(高適) 등과 교류하기도 했다. 746년 이후 두보는 거처를 장안으로 옮겨 와 고위 관리에게 벼슬을 구하는 간알시(干謁詩)를 써서 보내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애썼다. 이러한 생활이 10년간 지속되면서 두보는 점차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였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삶에 대해 절감하기 시작했다. 755년은 그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해였다. 그해 10월, 그는 10년 노력의 결과로 무기의 출납을 관리하는 우위솔부주조참군(右衛率府?曹參軍)이라는 미미한 벼슬을 받고 스스로 낭패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이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당 왕조를 거의 멸망시킬 만큼 파급력이 대단했던 안사의 난이 발발한다. 이후 두보의 삶은 전란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전개된다. 두보는 잠시 장안 근처 부주(?州)에 떨어져 살던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어린 아들이 먹지 못해 요절한 사실을 알고 참담한 마음으로 장편시 <장안에서 봉선으로 가며 회포를 읊어(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를 남겼다. 벼슬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처지를 그렸으며 총체적인 사회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이후 두보의 삶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다. 전란의 와중에 현종(玄宗)은 사천으로 피난 가고 숙종(肅宗)이 영무(靈武)에서 임시로 즉위한 사실을 알고 두보는 이를 경하하기 위해 영무로 가던 중 반군에 붙잡혀 장안으로 호송되어 얼마간 억류되었다.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봄의 전망(春望)>을 썼다. 757년 2월, 숙종이 행재소를 봉상(鳳翔)으로 옮겼을 때 두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장안을 탈출해 숙종을 배알해 그 공으로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곧 반군 토벌에 실패한 방관(房琯)을 변호하다 숙종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것은 곧이어 파직으로 이어졌다. 화주사공참군(華州司功參軍)으로 좌천된 두보는 벼슬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진주(秦州)행을 감행한다. 두보의 대표적 사회시로 알려진 이른바 <삼리(三吏)>와 <삼별(三別)>이 이즈음에 지어졌다. 759년 두보는 진주에서부터 여러 지역을 전전해 성도(成都)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두보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초당에 거처를 마련하고 나중에는 엄무(嚴武)의 추천으로 막부(幕府)에서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란 벼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엄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두보는 성도를 떠나 운안(雲安)을 거쳐 기주(夔州)에 이르게 되었다. 기주는 성도에 비해서도 더욱 낯선 곳이었지만 비교적 물산이 풍부했던 이곳에서 두보는 어느 정도 심신의 안정을 찾고 시가 창작에서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의 대표작으로 <가을날의 흥취(秋興八首)>를 꼽을 수 있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풍요로웠던 과거와 일순간에 일어난 전란을 지극히 미려한 언어로 수를 놓듯이 새긴 이 시는 율시(律詩)가 이룩한 미감의 정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두보는 기주 생활에 결코 안주하지 못했다. 중앙 정부에서 벼슬하리라는 희망을 끝내 놓을 수 없었기에, 768년에 협곡을 빠져나가 강릉(江陵)을 거쳐 악양(岳陽)에 이르렀다. 이후 그의 생활은 주로 선상에서 이루어졌고 건강이 악화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 악양과 담주(潭州) 사이를 전전하다 뱃길에서 사망했다. 시인 두보가 품었던 뜻은 시종일관 정치를 바르게 펼쳐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었으나 운명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삶은 자기 한 몸도 돌보기 힘들 만큼 곤란해지는 때가 많았다. 시인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그의 꿈은 아니었으나, 역설적으로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그는 더욱더 시인의 눈으로 피폐한 사람과 영락한 사물을 따뜻하게 돌아보고,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시를 썼다. 사후에 그에게 붙은 ‘시성(詩聖)’이나 ‘시사(詩史)’라는 칭호는 그의 고단하고 정직했던 삶에 대한 애도 어린 칭송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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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였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고전시가를 주로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과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에서 근무하였고, 현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정본완역 두보전집> 시리즈 역해 작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두보 배율 연구>(서울대출판문화원), <두보 오칠언절구>(문학과지성사), <유장경 시선>(지식을만드는지식)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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