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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34829
· 쪽수 : 406쪽
책 소개
목차
내 여자의 열매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기 부처
어느 날 그는
붉은 꽃 속에서
아홉 개의 이야기
흰 꽃
철길을 흐르는 강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내의 몸에서 피멍을 처음 본 것은 늦은 오월의 일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싱크대로 달려갔다. 플라스틱 대야에 넘치도록 물을 받았다. 내 잰걸음에 맞추어 흔들리는 물을 왈칵왈칵 거실바닥에 쏟으며 베란다로 돌아왔다. 그것을 아내의 가슴에 끼얹은 순간, 그녀의 몸이 거대한 식물의 잎사귀처럼 파들거리며 살아났다. 다시 한번 물을 받아와 아내의 머리에 끼얹었다. 춤추듯이 아내의 머리카락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내의 번득이는 초록빛 몸이 내 물세례 속에서 청신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체머리를 떨었다.
내 아내가 저만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사람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해. 몇십 년이 걸릴 것 같지? 최소한 오륙 년은 걸릴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이삼 년이면, 빠르면 육 개월이면…… 사람에 따라서는 집중적으로 두세 달이면 끝나.
어떻게 하느냐면, 그를 바쁘게 하는 거야. 당장이라도 수십 년 동안의 잠에 곯아떨어지고 싶어 할 만큼 피로하게 하고, 그러나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게 하는 거야. 쉬더라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주 조금만 쉬게 하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굴욕당하게 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수백만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도시, 수백만의 피로한 인간들을 뱉어내는 도시에 대한 영화야. 제목은 ‘서울의 겨울’이라고 붙이겠어. 겨울뿐인 도시…… 내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려 했던 도시를 위한 영화야.
―「철길을 흐르는 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