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34881
· 쪽수 : 171쪽
책 소개
목차
1부 소피아 로렌의 시간
소피아 로렌의 시간
대이동
물의 오파츠
남반구
루프트한자Lufthansa
창문극장
라디오 데이즈
네번째 사과
무연탄
몽타주
독재자
봄의 그라피티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들리는 가로수길에서
내간內簡
눈 내리는 마을
직립보행
2부 봄은 한쪽 눈을 감고 온다
아지랑이
직립보행
심장
바리데기를 새기다
금환일식
여독旅毒
인클로저enclosure
생일
두더지
신촌에서
외올실
봄은 한쪽 눈을 감고 온다
우로보로스
전신목
지하철 3호선
3부 버드배스birdbath
랜드마크
붉은 물병
바바리맨
옐로카드
DSLR
천사의 몫
헬보이Hellboy
엘리자베스 시대
동해안
릴리퍼트 플레이 홈스
파르티잔 리뷰
테이블
은유 돼지 삼형제
주사위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버드배스birdbath
신호등 아래서
육교 위에서
4부 태양의 풍속
포스트post
태양의 풍속
자살한 인공위성이 우리의 두 눈을 꽃잎으로 문지르고
미세먼지
블라디보스토크
오비디우스
말풍선
미셔너리 포지션missionary position
마블링
턱선
숲길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우각雨脚
지구
입속의 검은 잎
고급 독자
해설
권태의 고고학 - 함돈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곳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이지만, 방바닥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이면 약간의 현실이 묻어 나온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고 불어터진 면발을 드미는 배달원에게 주소의 허구성과 결제의 진정성에 대해 물을 수도 있다. 머리카락을 건지며 국물의 양심에 대해 투덜거리던 친구, 고데기로 말 수 있는 내용이 생각보다 짧다는 애인을 만날 수도 있다. 애인을 사랑한다면 약속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말려드는 것이라는 생각. 이곳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이지만, 그릇을 내다 놓으면 정오의 부재를 담을 수도 있고 쌓여가는 부재를 내려다보며 유년의 담배 연기를 입에 담을 수도 있다. 한 마리 사막여우가 지나간다면 연기는 약간의 현실보다 수다스러울 것. 일요일의 앞마당을 파면 사람이나 들짐승의 머리뼈를 볼 수도 있다. 해골에서 전갈이 나올까 봐 불안하지만, 해골과 전갈 중에 어느 것이 더 무서운지 내 머리는 알지 못한다. TV 속 미라가 자신의 머리카락에 휘감겨 있고 나는 백 년 뒤 자랄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입술을 통과하지 못한 말들이 두피를 꿰뚫는 밤이면 누군가의 현실도 검고 구불거린다. 이곳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이지만, 모래가 다 흘러내린 2분 57초마다 뒤집어진다. 당신과 나의 기다림이 처음 천장을 만들었을 때 유리관을 왕복하는 모래가 보였다. 사막여우는 길들이는 것보다 발달시키는 편이 낫다. 나처럼 아무도 썩지 않은 당신이 사상누각으로 서 있다.
* 1934년 여름 스웨덴의 고고학자 폴크 베르그만Folke Bergman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탐사하던 중 머리카락과 눈썹이 그대로 보존된 청동기 시대의 미라를 발견한다. 중국에서 발견된 백인 미라로서 소하공주小河公主 혹은 소하미녀小河美女라고 알려졌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치즈 덩이가 안겨 있었다. 같은 해 가을 이탈리아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이 태어났고, 후대의 연구자들이 미라에 배우의 이름을 딴 별명을 붙였다. 그녀의 배우자가 사망한 현재까지도 소피아 로렌은 생존 중이다.
―「소피아 로렌의 시간」 전문
저 눈이 마다가스카르 앞바다에서 태어난 구름이라고 생각하면
희망봉 설산의 용을 만난 것 같고, 용을 타고 날아가 스리랑카 홍차로 목을 축인 것도 같고, 인도차이나반도의 거북 껍질로 점괘를 얻은 것만 같다.
숨소리 낭랑한 지붕 위에서 팔짱 낀 중년의 머리끝에서 꾸벅꾸벅 여백을 옆에 앉힌 아가씨에게도
세계의 모든 모서리마다 이부자리를 까는 숫눈.
인도양 너머 동글동글한 새벽이 오면 발자국을 찍을 수 있을까?
종점에 두고 온 꿈결들을 깨울 수 있을까?
팡팡팡 한국산産 눈물이 쏟아진다. 우리는 마다가스카르 펭귄처럼 고개를 들고 눈사람의 진심을 그리워한다.
그가 믿었던 중력에 대하여
되돌아갈 팔과 다리에 대하여
목적지가 얼어붙은 환승 센터에 가면
당신도, 나도 갈 곳이 있다는 거짓말.
마다가스카르에는 고향이 없다.
동지冬至라고 부르는 투명한 일들과
남반구를 떠올리는 가정법이 있을 뿐.
―「남반구」 전문
[뒤표지 글(시인의 글)]
처음 詩를 쓰던 날, 누군가 먼저 불러주기를 나는 얼마나 고대했던가. 있지도 않는 약도를 진실과 진리의 별자리 옆으로 슬며시 내려놓으며, 얼마나 구차하게 두근거렸던가.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어렵사리 구한 중고 엘피판을 틀지 못하고 만지작거린다. 사막의 기록이 몇 개의 미라와 함께 부스럭거렸다. 모래폭풍을 헤집고 다녀간 여급의 발자국이 보인다면, 아직 이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문 닫힌 바그다드 카페, 낡은 테이블에 흐트러진 몇 권의 시집을 떠올린다. 죽거나 죽어가는 시인들은 어떻게 침묵에서 형식을 상연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형식에서 의미를 떠올린다는 건 얼마나 고요한 일일까. 무대 밖 현실은 늘 습작 같았지만, 요란스러운 감상도 이유 없는 비판도 내게는 초연이었다. 마시다 만 커피가 말라 찻잔의 우주가 되듯이, 쓰다만 詩가 마침내 詩가 되는 문학적 아이러니. 누군가 말 못할 낭만이라 비웃는다 해도 그것의 근원은 아슬아슬하게 사랑스럽다.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라스베이거스의 찢어진 습작 속에 두고 왔던 건 외로움이 아니라 음악을 대신할 당신의 육성이었다.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