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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32035024
· 쪽수 : 244쪽
책 소개
목차
제1장 도착
제2장 최초의 작은 작업
제3장 엄습하는 전염병과 마을 사람들의 퇴거
제4장 폐쇄
제5장 버려진 사람들의 협력
제6장 사랑
제7장 사냥과 눈 속의 축제
제8장 느닷없는 발병과 공황
제9장 마을 사람들의 복귀와 병사의 도살
제10장 심판과 추방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리뷰
책속에서
한밤중에 동료들 가운데 소년 두 명이 탈주했기 때문에, 새벽녘이 되어서도 우리는 출발하지 않았다.
우리는 환성을 지르고 골짜기에 팬 가느다란 개울로 진흙투성이 팔을 휘두르며 달려갔다. 그곳에는 마른 이끼로 뒤덮인 미끌미끌한 돌과 그 사이를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이 조금 있어, 거기에 손가락을 담그자 극심한 통증이 온몸을 휘저었다. 그러나 추위에 빨갛게 부어 마비된 손가락을 쓱쓱 문지르고 있으니 손 갈퀴 사이로 아주 잠깐 생기는 작은 무지개, 햇살이 아롱거리는 반짝임 따위가 우리들 목구멍에 쾌활한 웃음을 연달아 불러일으켰다. / “깨끗이 씻어, 세균 천지야.”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안 씻는 녀석을 만지면 전염병에 걸려.” / “병든 개, 병든 쥐.” 미나미가 우스꽝스럽게 소리치며 물을 사방으로 튕겼다. “병든 고양이, 병든 하늘소.”
아직 시간은 있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전염병이 창궐하는 골짜기에 우리들만 달랑 남겨지는 처지를 겪지 않아도 돼. / 하지만 기대는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거의 순식간에 대장장이가 오른팔에 큼직한 바구니를 그러안고 다시 뛰어 돌아온 것이다. 그는 밤눈에도 똑똑히 보이는 하얀 입김을 힘차게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바구니 안에서 허둥지둥 날뛰고 있는 하얀 토끼를 보고 완전히 얼이 빠졌다. 마을 사람들 무리가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술렁거림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대로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나는,” 미나미는 간신히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에게 알려줄 거야. 우리가 달랑 남겨졌다는 걸 알려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