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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35567
· 쪽수 : 597쪽
책 소개
목차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 국도의 끝 | 구운몽 | 웃음소리 | 총독의 소리 | 주석의 소리 | 가면고 |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제1장 | 달과 소년병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런데 여기 그의 어린 시간이 있었다. 어질머리를 어질머리로서 살 수 있는 오직 한 번의 기회로서의 한 사람의 소년의 시간. 그는 세계라는 어질머리와 자기 사이에 책이라는 완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책을 음악처럼 읽었다. 등장인물이라는 이름의 선율들이, 그의 책의 페이지 위에서 아름다운 어질머리를 풀어나갔다. 아름다움을 남보다 더 누린 사람은 반드시 그 갚음을 해야 한다. 월남 후 그는 그 갚음을 하기에 이십 년을 허비했다. 그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슬픔이었고, 그가 어질머리라 생각했던 것이 무서움임을 알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구보에게는 이 삶은 한 견딤, 한 수고受苦였다.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
오후 망보기를 하고 있었다. 왜군들은 진지를 다 끝내고 쉬고 있다. 야산에 자란 잡목 그늘에 누워도 있고, 천막 안에도 있고, 서너 명이 학교 쪽으로 걸어간다. 소년은 긴장한다. 왜병들이 울타리도 없는 운동장에 들어가서 선다. 구경을 한다. 그러더니 줄다리기에 두 편으로 갈라서 끼어들어 어울린다. 흰 이가 드러나는 왜병들과 아이들 영차영차 소리, 사람들이 와르르 흔들린다. 망원경을 잡은 손이 제 손 같지 않게 흔들리는 것이다.
「달과 소년병」
대저 반도에 대한 제국의 전통적인 정책은 이 지역에 풍족하고 자리 잡힌 국민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고 전란과 혁명으로 지새우게 하며 그러면서도 제삼국의 손아귀에 안전히 들어가게는 놓아두지 않음으로써 반도로 하여금 사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죽는 것도 아닌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지경에 머무르게 하여 제국의 번영을 위한 울타리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 반도인으로 하여금 반도인을 고달프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반도인들은 그들의 처지를 몸서리치도록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다는 것을. 죽음의 검은 그림자는 반도의 산하에서 걷히지 않았다는 것을. 작년에 왔던 각설이는 금년에도 또 온다는 것을. 이런 사실들을 이들은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반도인들이 앞으로도 군비軍備의 짐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암마. 그들이 기르고 있는 엄청난 병력이야말로 반도인들의 발에 매달아놓은 쇠사슬입니다. 그들은 빈곤의 늪에서 쇠사슬에 묶여 철거덩 철버덕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어느 쪽도 군비를 낮출 수 없을 것
이외다. 더욱더 증강해야 될 것이외다. 아무리 벌어도 소용없을 것이외다.
「총독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