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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신학
· ISBN : 9788932112527
· 쪽수 : 760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씀 - 역사 공부는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게 해 주는 나침반· 4
추천의 말씀 - 역사 공부는 삶의 지혜를 공부할 수 있는 길· 7
옮긴이들의 말 - 교회사의 깊이와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는 특별한 책, 《세계 교회사 여행》 · 10
일러두기· 13
제11장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19
Ⅰ.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 20
Ⅱ. 종교 개혁가들· 44
Ⅲ. 여러 교파로 쪼개지는 유럽· 81
제12장 가톨릭의 쇄신· 93
Ⅰ. 16세기 가톨릭의 개혁· 94
Ⅱ. 17세기 종교적 부흥· 126
Ⅲ. 가톨릭의 갈등과 위기· 144
제13장 세계 복음화· 173
Ⅰ. 근대의 대규모 선교 개시· 174
Ⅱ. 대륙 선교· 195
Ⅲ. 유럽의 선교관과 위기에 봉착한 18세기 선교· 237
제14장 교회를 뒤흔든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246
Ⅰ. 18세기의 변화· 247
Ⅱ. 프로테스탄트와 동방 교회의 부흥· 264
Ⅲ. 프랑스 혁명의 충격· 282
제15장 그리스도교의 부흥과 자유주의· 320
Ⅰ. 그리스도교의 부흥· 321
Ⅱ. 하느님과 자유· 346
Ⅲ. 제1차 바티칸 공의회· 379
제16장 세속화와 교회의 대응 그리고 다원주의· 392
Ⅰ. 유럽 한복판에 불어 닥친 소용돌이· 393
Ⅱ. 프랑스 가톨릭과 제3공화정· 400
Ⅲ. 제1차 세계 대전부터 1930년대까지· 425
제17장 세계적인 그리스도교· 459
Ⅰ. 19세기 선교 부흥의 원천· 460
Ⅱ. 대륙 선교· 480
Ⅲ.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선교· 514
제18장 근대주의의 무게: 산업 사회·근대 사상·교파 분열에 직면한 그리스도인· 525
Ⅰ. 산업 사회의 그리스도인· 526
Ⅱ. 가톨릭 전통과 근대 과학의 힘겨루기· 546
Ⅲ.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딘 교회 일치 운동· 572
제19장 제2차 세계 대전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590
Ⅰ. 제2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진 그리스도인· 591
Ⅱ. 전후 정치적 사건들이 종교에 미친 영향· 614
Ⅲ. 사목적·신학적 역동성· 630
제20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649
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650
Ⅱ. 다소 예기치 못한 공의회의 결과· 674
Ⅲ. 환멸과 희망· 689
Ⅳ. 요한 바오로 2세와 두 번째 천년기의 끝· 708
연대표· 727
참고 문헌· 733
색인· 748
책속에서
근본적으로 르네상스는 중세와의 철저한 단절은 아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모든 분야, 즉 문학·예술·과학에서 온갖 종류의 고대를 다시 발견했다. 고전 라틴어에 훨씬 더 친숙해 있던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수도원에서 빛을 보지 못한 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고전 문학 작품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베사리온Bessarion과 같은 동로마 제국의 학자들은 수많은 고전 그리스어 필사본을 갖고 콘스탄티노플을 탈출하여 서방으로 피신해 왔다.
-‘제11장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26쪽에서 -
루터에 대한 서로 상반된 의견들이 하나의 일치된 의견으로 합쳐진 것은 불과 몇 십 년 전부터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루터를 진정한 종교적인 영감에 감화되어 교회를 개혁하려 했던 신앙인으로 생각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사실과 교회가 루터를 오해한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 신자들도, 루터가 성격이 난폭하고 고집스러울 뿐만 아니라 맥주를 병적일 정도로 좋아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제11장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44~45쪽에서 -
17~18세기,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책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를 발견했다. 1784년 사절단의 일원으로 베이징(북경)을 방문한 젊은 유학자 이승훈은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았다.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동료 유학자 이벽과 함께 세례성사와 고해성사 그리고 미사를 집전하면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건설했다. 이벽은 유학 전통에 입각하여 그리스도교 신학을 만들어 냈다. 자신의 이 같은 활동이 과연 맞는지 의심을 품은 이승훈은 사제를 보내 달라고 베이징 주교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조선에서의 첫 번째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박해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제13장 세계 복음화’ 233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