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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역사

예수와 역사

샤를르 페로 (지은이), 박상래 (옮긴이)
  |  
가톨릭출판사
2012-02-29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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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역사

책 정보

· 제목 : 예수와 역사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신학
· ISBN : 9788932112602
· 쪽수 : 572쪽

책 소개

1985년에 처음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예수와 역사>를 수정·보완한 책이다. 세계적인 성경 학자이자 기원후 1세기의 유다교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샤를르 페로 신부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유다교라는 구체적인 맥락 안에서 파악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앙의 그리스도’입니다. 즉 믿는 이들의 첫 공동체가 만들어 낸 신약 성경 안에서 만나는 분이다.

목차

일러두기
약어 풀이
옮긴이의 말
소개의 말
계획

제1부 복음서들과 역사
제1장 예수와 역사 문제
1. 주석학과 역사
2. 복음과 역사
3. 역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제2장 공간과 시간 안에서
1. 한 생애와 한 죽음의 시간
2. 여정과 그 장소들
제2부 예수와 유다교
제3장 예수와 침례 운동
1. 기원후 1세기의 침례 운동의 현상
2. 세정례와 정화욕
3. 침례 운동
4. 요한 세례자와 예수
제4장 예수, 성전 그리고 율법
1. 예수는 바리사이 경향의 율법 학자였는가
2. 성전 문제
3. 예수와 율법
제3부 하느님 나라의 예언자 그리고 사람의 아들
제5장 예언자 예수
1. 엇갈리는 그리스도교 전승
2. 메시아사상과 예언자 사상
3. 새 시대의 예언자들
4. 예언자 예수
5. 예수는 종말론적 예언자인가
제6장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
1.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의 문제
2. 예수의 기적들을 회상하는 그리스도교
3. 하느님 나라의 예언자
제7장 사람의 아들
1. 방법론과 학계의 견해들
2.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사람의 아들
3. 팔레스티나 본토와 사람의 아들
4. 사람의 아들과 예수
제8장 예수와 하느님 아버지
1.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첫 공동체에서의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현
2. 예수와 하느님 아버지
제4부 그리스도교적 역사의 탄생
제9장 빵, 말씀 그리고 역사
1. 주님의 만찬
2. 식사와 말씀
3. 말씀과 역사
부록
각 장의 주
찾아보기

저자소개

샤를르 페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9년 프랑스 물랭 출생 1953년 사제 수품 1955년 물랭 교구 신학교 교수 1960년 리옹 가톨릭대학 고대 근동 언어(시리아어, 아람어), 신약 성경 교수 1969~1994년 파리 가톨릭대학 고대 근동 언어, 신약 성경 교수 1994년 은퇴 후 파리 가톨릭대학 명예 교수 저서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2001, 가톨릭출판사), 《예수 이후: 초대 교회의 직무》(2002, 가톨릭출판사),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2006, 가톨릭대학출판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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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래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63년 리옹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1964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1968년부터는 로마성서대학에서 공부하고 1971년부터 서울가톨릭대학교에서 그리고 1987년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가르쳤다. 저서에 「성서와 그 주변 이야기」가 있고, 「고린토 후서」·「산상설교(소책38)」·「신약성서입문」·「예수와 역사」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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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와 같이 예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결국 대부분 그리스도교 계통의 문헌들에 의존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문헌들이 파스카 신앙에 잔뜩 물들어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터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골고타의 사건 이전의 나자렛 예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신약 성경이라고 하는 문헌은 믿는 이들의 첫 공동체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목적도 주로 이들 공동체에 이바지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파스카 이전의 예수를 정확하게 그려 주는 상을 제공받을 수 있는가?
- ‘제1장 예수와 역사 문제’ 중에서


그리스도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침례 운동 또는 세례 운동이다. 예수가 요한 세례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훗날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집전할 뿐 아니라 할례 대신 이 세례를 새로운 계약의 하느님의 백성에 가입시키는 입교 의식으로 삼게 된다. 예수와 요한 세례자를 이어 주는 유대는 이렇게 당연한 것으로 요청된다. 예수의 활동은 요한 세례자의 발자취를 따라 전개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바오로 사도가 요한 세례자에 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바오로의 친서들에서는 하지 않는다. 복음사가들은 요한 세례자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고 있는데, 그와 그의 활동을 예수에게 종속시켜 소개하려는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공관 복음사가들은 예수가 침례 운동을 했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지만,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가 “유다 땅으로 가시어 …… 세례를 주셨다.”(요한 3,22)라고 말한다. 거기서 좀 더 읽어 내려가면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이렇게 말한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요한 3,26) 복음사가는 곧이어 이 말의 내용을 좀 더 자상하게 밝혀 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요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제자로 만들고 세례를 준다는 소문을 바리사이들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요한 4,1) 그리고 그다음 절에서는 여기에 쐐기를 박는다. “사실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다.”(요한 4,2) 이와 같이 원시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요한 세례자와 예수를 밀접하게 연결하면서도 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 간격을 분명하게 역설하고 있다. 역사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이 간격을 제대로 측정하는 일이다.
- ‘제3장 예수와 침례 운동’ 중에서


앞 장에서는 침례 운동의 특성을 강조하였다. 요한 세례자의 동작은 단순한 세정례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았다. 실상 독자에 따라서는, 기원후 1세기의 유다교는 외적인 의식을 지키는 데만 골몰하던, 이를테면 그 수준이 저속한 형식주의적 종교에 머물러 있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당대의 유다교 실정과는 거리가 멀다. 성전과 율법에 대한 예수의 독창적인 태도와 입장을 돋보이게 하기 이전에, 이에 못지않게 예수가 얼마나 친바리사이계 율법 학자들과 가까웠는지를 말해 둘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짧게 다루어도 좋을 것이다. 예수의 이른바 친바리사이즘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미 많은 연구가 있었고 그 결과 이제는 정설로 내세울 만한 견해 일치에 이르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가 바로 여러 가지 점에서 바리사이들과 가까운 율법 학자였기 때문에 성전과 율법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생소한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유다교계와 그리스도교계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예수와 유다교 전통 사이에 맞닿는 점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는 당연한 결론이요, 이 유다교 전승의 일부는 옛 바리사이즘의 유산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어서 많은 연구가들은 표현에서나 사상에서나 한편으로는 복음서와, 다른 편으로는 구약과 신약 중간 시대에 햇빛을 보게 된 몇몇 문학 작품들과 타르굼 및 율법 학자들의 문헌 사이에 새로운 유사점들을 계속 발굴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예수가 뿌리내리고 있던 토양은 어디까지나 기원후 1세기의 팔레스티나다. 그런데 몇 십 년 전만 해도 이 토양이 이른바 헬라계의 영지주의의 이름 없는 한 유파였다고 주장하던 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라는 한 예언자적 인물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전의 혼탁하고 잡다한 유다교의 틀 안에 끼어 맞추려고 지나치게 부심하다 보면, 오히려 그 차이들을 가리고 예수를 이름도 분명치 않은 어느 ‘카리스마적’ 율법 학자의 수준으로 격하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 예수의 공생활에 뒤이어 온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 운동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위험도 없지 않다. 그리스도교든 유다교든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는 신학이 개중에는 없지도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이런 근본주의 유형에 속하는 신학은 예수를 당대 유다교에 무리하게 끼어 맞춰 놓은 다음 거기에 너무 쉽게 역사라는 상표를 붙이려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순진함은 자칫 예수의 유다교 친근성을 연구하는 중대한 작업을 중단시킬 수도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 ‘제4장 예수, 성전 그리고 율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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