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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신앙생활
· ISBN : 9788932112732
· 쪽수 : 376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7
제1부 쉴 수 없는 사람들 9
도덕 없는 법은 쓸모없다 11
큰 가지에 달린 꽃잎들 56
보이지 않는 낚싯바늘 91
제2부 와서 보아라 133
부러진 갈대 135
요나의 표징 183
보통 수준의 생활 방식 204
제3부 늦게야 임을 사랑했습니다 239
타고난 수도자 241
단순한 임무들 276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 317
리뷰
책속에서
어쨌거나 가브리엘은 그 냉장고를 열어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소리쳤다. “와! 이 탄산음료들 좀 봐! 나도 여기서 살아야겠다!”
“그래?” 우리가 냉장고 앞에 서 있을 때 내가 말했다. “네가 이곳에 살려면 넌 가난해져야 하고 돈 한 푼도 가질 수 없게 된단다.”
가브리엘은 조용히 손익 계산을 해 보더니 말했다. “그래도 좋아요. 전 항상 돈이 없는 걸요, 뭘.”
“거기다가 여자 친구도 사귈 수 없고 수련장님의 말씀은 무엇이든 다 듣고 순종해야 한단다.”
“지금도 여자 친구는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부모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걸요.” 그러고는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덧붙였다. “여기 들어오는 게 좋겠어요. 탄산음료를 공짜로 마실 수 있잖아요!”
나는 그곳 생활이 즐거웠고, 기업체를 떠날 수 있어 행복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위장도 그다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입회하고 나서 몇 달 후 한 친구가 물은 적이 있었다. “네 배 속은 수련원이 좋은가 본데, 어떻게 된 거야?”)
수련기는 자신을 살펴보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아루페 하우스는 뒤로 물러나서 사물을 보되 무엇보다도 성찰하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성찰한다는 말은 완벽한 단어였다. 나는 잔잔한 연못처럼 고요한 상태에서 지난날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내 가족과의 체험들, 내 친구들, 내 직장 생활, 나의 욕구와 사랑과 좌절들을 되새겨 보고 그것을 기도 중에 하느님 앞에 바쳤다.
어느 날 아침에 장상 수녀가 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짐 수사님, 수사님께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러고는 피 묻은 붕대로 목을 감싼 채 앉아 있는 한 사내가 머무는 작은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녀는 천천히 붕대를 풀어냈다. “이 사람은 후두암을 앓고 있어요. 우린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해요.” 나는 도저히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그의 질병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을 수는 있었다. 죽음의 냄새였다. 울컥 슬픔이 솟구치며 그에게 메스꺼움을 느낀 것에 대해 죄책감마저 들었다.
내가 이와 똑같은 광경을 영화에서 보았더라면 분명 엄청난 감동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화관에 앉아서 ‘와,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내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아침 한 사람을 씻기다가 문득 만일 이것이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었다면 틀림없이 감동적인 배경 음악이 흘러나왔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빠진 것이 어쩌면 그것일지 몰랐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나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수도원 노래들은 대부분 내 기분을 북돋고 내게 대고 코를 풀어 대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