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두보시선

두보시선

(역사가 남긴 향기)

두보 (지은이), 이원섭 (옮긴이)
  |  
현암사
2003-03-10
  |  
15,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13,500원 -10% 0원 750원 12,75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두보시선

책 정보

· 제목 : 두보시선 (역사가 남긴 향기)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88932311722
· 쪽수 : 424쪽

책 소개

중국의 시성 두보의 시작들을 모아 엮었다. 이전의 출판본에서 활자의 오식을 바로잡고, 작품의 제작 연대를 보충하여 재출간한 책. 소재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전체 5부로 묶었으며, 해석과 본문, 각주와 해설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

두보의 시를 다시 펴내며

1. 꽃이 지는 강촌

절구 1
절구 2


곡강(曲江)
곡강2
소한식에 배를 띄우고
입춘
12월 1일
강가에서
밤길의 나그네
낙화
낙일(落日)
봄비 오는 밤
귀뚜라미
반딧불
초승달
강촌
손님
시골 늙은이
어느 선사에게
우두사를 바라보고
도솔사

2. 우정의 푸른 물결

이귀년(李龜年)
이백에게
왕랑을 전송하면서
음중팔선가
조장군에게
하(何)장군의 산장 1
하장군의 산장 2
하장군의 산장 3
하장군의 산장 4
하장군의 산장 5
하장군의 산장 6
하장군의 산장 7
하장군의 산장 8
하장군의 산장 9
하장군의 산장 10
다시 하장군의 산장에 와서 1
다시 하장군의 산장에 와서 2
다시 하장군의 산장에 와서 3
다시 하장군의 산장에 와서 4
다시 하장군의 산장에 와서 5

3. 역사가 남긴 향기

우임금 사당에서
선주의 묘에 배알하고
소릉에서
다시 소릉에 와서
승상을 생각하며
고적을 찾아 1
고적을 찾아 2
고적을 찾아 3
고적을 찾아 4
고적을 찾아 5

4.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

왕손을 슬퍼함
행재소에 도착하여 1
행재소에 도착하여 2
행재소에 도착하여 3
술회
강촌(羌村)
강촌 2
강촌 3
봉선현을 찾아가면서
북정
신안 마을에서
동관에서
석호 마을에서
수로별(垂老別)
무가별(無家別)
신혼별(新婚別)
박계행
팽아행(彭衙行)
전출새(前出塞) 1
전출새 2
전출새 3
전출새 4
전출새 5
전출새 6
전출새 7

5. 나라는 깨져도 산하(山河)는 남고

연주의 성루에 올라서
이산
백제성최고루(白帝城最高樓)
반조(返照)
검문(劍門)
철당협(鐵堂峽)
석감(石龕)
구당양안
백제성(白帝城)에 올라서
성에 올라
서울의 수복(收復)
견우(遣憂)
각야(閣夜)
다락에 올라서
눈오는 날에
들녘에 서서
등고(登高)
한별(恨別)
춘망(春望)
기쁜 소식
우목(寓目)
추흥(秋興) 1
추흥 2
추흥 3
추흥 4
추흥 5
추흥 6
추흥 7
추흥 8
비가(悲歌) 1
비가 2
비가 3
비가 4
비가 5
비가 6
비가 7

두보의 생애와 시 - 이원섭
연보(年譜)

저자소개

두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 시단을 대표하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다. 그는 본래 유가(儒家)로서 정치에 몸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결국 시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두보가 처한 시대는 당나라가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다가 안사의 난으로 제국의 붕괴 위기를 맞았던 때였다. 그의 생애는 크게 보아 755년에 발발한 안사의 난을 중심으로 전·후반으로 양분된다. 안사의 난 이전, 그는 당대의 다른 시인들처럼 독서와 유람으로 견문을 쌓아 착실히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했다. 735년 진사 시험의 낙제는 그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재차 유람에 나서는 한편 이백, 고적(高適) 등과 교류하기도 했다. 746년 이후 두보는 거처를 장안으로 옮겨 와 고위 관리에게 벼슬을 구하는 간알시(干謁詩)를 써서 보내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애썼다. 이러한 생활이 10년간 지속되면서 두보는 점차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였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삶에 대해 절감하기 시작했다. 755년은 그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해였다. 그해 10월, 그는 10년 노력의 결과로 무기의 출납을 관리하는 우위솔부주조참군(右衛率府?曹參軍)이라는 미미한 벼슬을 받고 스스로 낭패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이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당 왕조를 거의 멸망시킬 만큼 파급력이 대단했던 안사의 난이 발발한다. 이후 두보의 삶은 전란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전개된다. 두보는 잠시 장안 근처 부주(?州)에 떨어져 살던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어린 아들이 먹지 못해 요절한 사실을 알고 참담한 마음으로 장편시 <장안에서 봉선으로 가며 회포를 읊어(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를 남겼다. 벼슬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처지를 그렸으며 총체적인 사회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이후 두보의 삶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다. 전란의 와중에 현종(玄宗)은 사천으로 피난 가고 숙종(肅宗)이 영무(靈武)에서 임시로 즉위한 사실을 알고 두보는 이를 경하하기 위해 영무로 가던 중 반군에 붙잡혀 장안으로 호송되어 얼마간 억류되었다.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봄의 전망(春望)>을 썼다. 757년 2월, 숙종이 행재소를 봉상(鳳翔)으로 옮겼을 때 두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장안을 탈출해 숙종을 배알해 그 공으로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곧 반군 토벌에 실패한 방관(房琯)을 변호하다 숙종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것은 곧이어 파직으로 이어졌다. 화주사공참군(華州司功參軍)으로 좌천된 두보는 벼슬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진주(秦州)행을 감행한다. 두보의 대표적 사회시로 알려진 이른바 <삼리(三吏)>와 <삼별(三別)>이 이즈음에 지어졌다. 759년 두보는 진주에서부터 여러 지역을 전전해 성도(成都)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두보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초당에 거처를 마련하고 나중에는 엄무(嚴武)의 추천으로 막부(幕府)에서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란 벼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엄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두보는 성도를 떠나 운안(雲安)을 거쳐 기주(夔州)에 이르게 되었다. 기주는 성도에 비해서도 더욱 낯선 곳이었지만 비교적 물산이 풍부했던 이곳에서 두보는 어느 정도 심신의 안정을 찾고 시가 창작에서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의 대표작으로 <가을날의 흥취(秋興八首)>를 꼽을 수 있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풍요로웠던 과거와 일순간에 일어난 전란을 지극히 미려한 언어로 수를 놓듯이 새긴 이 시는 율시(律詩)가 이룩한 미감의 정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두보는 기주 생활에 결코 안주하지 못했다. 중앙 정부에서 벼슬하리라는 희망을 끝내 놓을 수 없었기에, 768년에 협곡을 빠져나가 강릉(江陵)을 거쳐 악양(岳陽)에 이르렀다. 이후 그의 생활은 주로 선상에서 이루어졌고 건강이 악화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 악양과 담주(潭州) 사이를 전전하다 뱃길에서 사망했다. 시인 두보가 품었던 뜻은 시종일관 정치를 바르게 펼쳐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었으나 운명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삶은 자기 한 몸도 돌보기 힘들 만큼 곤란해지는 때가 많았다. 시인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그의 꿈은 아니었으나, 역설적으로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그는 더욱더 시인의 눈으로 피폐한 사람과 영락한 사물을 따뜻하게 돌아보고,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시를 썼다. 사후에 그에게 붙은 ‘시성(詩聖)’이나 ‘시사(詩史)’라는 칭호는 그의 고단하고 정직했던 삶에 대한 애도 어린 칭송이 아닐까 한다.
펼치기
이원섭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24년 6월 30일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파하(巴下)이다.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43년 혜화전문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8년『예술조선』현상 공모에 응모하여 「기산부(箕山賻)」,「죽림도(竹林圖)」등이 당선되었으며, 1949년『문예』지에 「언덕에서」외 2편이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하였다. 1953년 6・25전쟁 당시 남해 가덕도에 2년간 머물며 쓴 50~60편의 시를 묶어 시집 『향미사(響尾蛇)』를 출간한 뒤 상경하여 숙명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60년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하였고,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1979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에 선임되었고, 1985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0년에는 만해의『불교대전』을 역주하였고, 1982년에는『법화경』을 우리말로 옮겼다.『선시(禪詩)』,『당시(唐詩)』,『노자(老子)』,『장자(莊子)』,『논어(論語)』등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시집『향미사(響尾蛇)』,『담배파이프』(1959),『이 밤의 밀어(密語)』(1966),『내가 뱉은 가래침』(2001)과 『법구경의 진리』,『깨침의 미학』,『자서록(自敍錄)』,『현대인의 불교』등이 있다.
펼치기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