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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32318547
· 쪽수 : 18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얘들아, 개학이 된 걸 기뻐해라. 그리고 학교에 고마워해라. 학교가 없으면 방학 같은 것도 없으니까.”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 말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한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톤이었다.
“의미 있는 건 없어. 나는 오래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은 거야.”
안톤은 이렇게 말한 뒤 가방을 챙긴 다음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문도 닫지 않은 채 교실에서 나가 버렸다. 교실 문이 웃었다. 그 문이 웃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안톤이 열어 놓고 간 그 문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내가 그 애를 쫓아가려고 나서면 나를 꿀꺽 삼켜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문은 대체 누구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걸까? 나를 향해? 우리 모두를 향해?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건 안 돼, 윌리엄. 입양증명서는 출생증명서와 같은 거야. 그것은 늘 지니고 있어야 해. 함부로 내놓을 수 없는 거라고.”
그러자 윌리엄이 너그러운 척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미안해. 하지만 내 일기장도 내 인생인 만큼 함부로 내놓을 수 없는 거야. 내 일기장이 이 물건 더미에 놓일 수 있는데 왜 입양증명서는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서든 이 물건 더미는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우리의 의도 아니었냐고?”
“그렇긴 하지만 그것만은 안 돼.”
마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바람에 여섯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윌리엄은 정중하게 고집을 피웠다. 우리는 어떻게 반대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때 안나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 서 있었다.
“안 될 것 없어. 아니, 그렇게 해. 아주 좋은 생각이야. 이런저런 이유로 참여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물건 더미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해. 그럼 결국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안톤의 말이 옳은 것이 되지.”
안나의 말이 백번 옳았다. 입양증명서도 물건 더미에 추가되었다. 안나가 잉그리드에게 새 목발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