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동유럽소설
· ISBN : 9788932403939
· 쪽수 : 444쪽
책 소개
목차
계피색 가게들
8월
방문
새
마네킹
마네킹에 대한 논설 - 혹은 창세기 제2권
마네킹에 대한 논설 - 계속
마네킹에 대한 논설 - 결론
네므로트
판
카롤 아저씨
계피색 가게들
악어 거리
바퀴벌레
돌풍
위대한 계절의 밤
혜성
모래시계 요양원
책
천재의 시대
봄
7월의 밤
아버지, 소방대에 입대하다
두 번째 가을
죽은 계절
모래시계 요양원
도도
에지오
연금 생활자
외로움
아버지의 마지막 탈출
주
해설: 다채롭게 꽃피는 상상력의 향연
판본 소개
브루노 슐츠 연보
리뷰
책속에서
어느 날, 봄의 대청소 기간 동안, 아델라가 갑자기 아버지가 이룩한 새들의 왕국에 나타났다. 문가에 서서 아델라는 방을 가득 채운 악취와, 마룻바닥과 식탁과 의자를 덮고 있는 새똥 더미를 보고 절망하여 양손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즉시 망설이지 않고 창문을 열어젖힌 후 긴 빗자루를 사용하여 새 떼를 모두 들쑤셔 깨웠다. 깃털과 날개의 괴물 같은 구름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랐고, 아델라는 바쿠스의 지팡이가 일으키는 돌풍으로 보호받는 분노한 시녀 메나드처럼 파괴의 춤을 추었다. 아버지는 공포에 질려 팔을 휘두르며 당신의 깃털 달린 패거리와 함께 공중으로 떠오르려 했다. 날개 달린 구름은 천천히 멀어져 갔고, 마침내 아델라는 지쳐 숨을 헐떡이며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에 남겨졌다. 아버지는 걱정스럽고 풀 죽은 표정으로 완전한 패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p34 「새」 중
그런 밤에 어린 소년을 급하고 중요한 심부름을 시키러 내보내는 것은 대단히 멍청한 짓인데, 왜냐하면 그 반쯤 어두운 속에서 거리는 늘어나고 혼란스럽게 얽혀 들기 때문이다. 도시 깊은 곳에서 반사된 거리들, 똑같이 생긴 가짜 거리들, 속임수 거리들이 열린다. 상상력은 마법에 걸리고 잘못 이끌려, 익숙해 보이는 지역의 허구적인 지도, 거리가 원래 이름대로 제자리에 있지만 밤의 지칠 줄 모르는 생산성으로 새롭게 허구적으로 배치된 지도를 만들어 낸다. 그런 겨울밤의 유혹은 대체로 빠르지만 익숙지 않은 지름길을 택하려는 순진한 욕구에서 시작된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옆길을 택하면 복잡한 걸음을 짧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 상황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p75 「계피색 가게들」 중
어색하게 찌푸린 얼굴들을 둘러보며 나는 50년 전의 똑같은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어머니 곁에 서 있었고, 어머니는 여자 선생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어머니 대신 선생의 귀에 무언가 속삭이는 것은 교장이었고, 선생은 머리를 끄덕이며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이 학생은 고아입니다.”
마침내 교사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아빠도 엄마도 없으니 여러분이 잘해 주어야 합니다.”
그 짧은 소개를 듣고 눈물이, 감정에 겨운 진짜 눈물이 흘러나왔고, 교장은 그 자신도 감동하여 나를 교단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혔다.
이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내 학교에 푹 빠져들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수천 가지 일들과 계략에 열중하고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내 인생에 끊임없이 신나는 일들이 일어났다. 머리 위로 수많은, 복잡한 메시지들이 줄지어 오갔다. 신호와 전보와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받는 맨 끝에 내가 있었다. 아이들은 내게 쉬잇 소리를 내고, 눈을 찡긋거리며, 내가 지키겠다고 맹세한 수백 가지 약속을 갖은 방법으로 상기시켰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수업하는 동안에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모든 공격을 냉정하게 견뎌 냈고 교사의 말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종이 울리자마자 소리 지르는 아이들 떼거리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초등학생다운 기세로 나를 둘러싸고 나를 거의 갈가리 찢어 놓았다. 그들은 뒤에서 다가오거나 책상 위로 쿵쿵 뛰어다니면서, 머리 위로 펄쩍 뛰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각자 자기가 요구하는 바를 내 귀에 대고 소리 질렀다. 나는 모든 관심사의 중심이 되었고, 가장 중요한 계약, 가장 복잡
하고 의심스러운 거래는 내가 참여하지 않고서는 성사되지 않았다. 거리에서 나는 시끄럽고, 난폭한 몸짓을 해 대는 무리에 둘러싸여 걸었다. 개들은 멀리서 꼬리를 다리 사이에 넣고 지나갔고, 고양이들은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으며, 외롭고 작은 소년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면,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소극적으로 체념하고 어깨 사이로 머리를 수그렸다. -p377 「연금 생활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