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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소설론
· ISBN : 9788932404721
· 쪽수 : 373쪽
책 소개
목차
독자……
예비 성찰
1. 숲
2. 심층과 표층
3. 시냇물과 꾀꼬리
4. 배후 세계
5. 왕정복고기와 박식함
6. 지중해 문화
7. 이탈리아 대위가 괴테에게 말한 것
8. 표범 혹은 감각론
9. 사물과 그것의 의미
10. 개념
11. 문화 - 확실성
12. 명령으로 부과되는 빛
13. 통합
14. 비유어
15. 애국심 비평
첫 번째 성찰 - 소설에 대한 간략한 고찰
1. 문학 장르
2. 모범 소설
3. 서사시
4. 과거의 시
5. 음유 시인
6. 헬레네와 보바리 부인
7. 역사의 효모인 신화
8. 기사도 이야기
9. 마에세 페드로의 인형극
10. 시와 실재
11. 신화의 효모인 실재
12. 풍차
13. 리얼리즘 시
14. 풍자극
15. 영웅
16. 서정성의 개입
17. 비극(La tragedia)
18. 희극(La comedia)
19. 희비극(La tragicomedia)
20. 플로베르, 세르반테스, 다윈
훌리안 마리아스의 후기(Nota Final)
주
해설 돈키호테에게 스페인의 길을 묻다
판본 소개
오르테가 이 가세트 연보
리뷰
책속에서
나무들은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실 그 덕분에 숲이 존재한다. 눈에 드러난 나무들의 사명은 다른 나무들을 감추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풍경이 안 보이는 다른 풍경을 숨겨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숲속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감추어져 있다는 불가시성이 순전히 부정적인 성격을 가진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하나의 사물에 흘러내리면 사물을 변형시키고 거기서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앞의 구절이 말하듯 숲을 보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숲은 그 모습 그대로 잠재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비주의는 우리가 빛바랜 색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할 때의 신비주의보다 더 심오한 것이 아니다. 빛바랜 색을 보고 있다고 말할 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정확히 무슨 색인가? 우리는 한때 더 진했던 푸른색을 염두에 둔 채 바로 눈앞에 있는 푸른색을 보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색깔을 한때 그러했던 과거의 것과 함께 보는 것은 거울을 통해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능동적 시각인데, 이것이 바로 ‘이데아’이다. 한 색깔의 퇴락 혹은 퇴색은 그것이 겪게 되는 새로운 가상의 성질로서 일시적 심층성과 같은 무언가를 부여한다.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순간적으로 한눈에 그 색깔과 역사, 그것이 생생했던 시간과 현재의 쇠락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 안의 무언가가 곧바로 그 몰락과 쇠퇴의 운동을 반복하는데, 이는 왜 우리가 빛바랜 색깔 앞에서 우울해지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단순히 감각 기관들을 지탱하는 몸뚱이로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감촉을 느끼고, 맛보며, 신체적 쾌락과 고통을 느낀다. 일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고티에의 말을 반복한다. “외부 세계는 우리만을 위해 존재한다.”
외부 세계라! 그렇다면 비록 감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더 심층적인 영역에 있는 세계 역시 주체가 볼 때에는 외부 세계가 아니던가?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이 외부 세계일 뿐만 아니라 더욱 고도의 외부 세계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관념성이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얻어지는 데 반해 리얼리티, 즉 실재는 감각들의 틈새를 뚫고 들어와 야수나 표범처럼 난폭하게 우리를 덮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외부의 침입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게 만들고, 우리 내면을 텅텅 비게 하며, 이로 인해 우리는 결국 사물의 무리들이 드나드는 통로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할 위험에 직면하는 것이다. 감각의 지배는 이처럼 내면의 힘을 상실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