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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32473413
· 쪽수 : 352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처음 뵙겠습니다
1.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어떤 사람
도를 아십니까
인생의 전성기
술버릇 ABC
술버릇 ABC - 친구편
좋은 사람들 ABC
온천에 있는 사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뭐한 말버릇
봄이니까 하는 권유
이 정도만 해 줘
샤크 다이어트
감정의 토로
귀여운 외국인
그런 거 상관없어
은근히 무서운 것
얼렁뚱땅 넘어가지 마
치사한 것들
룸 ★ 바
결혼식
2. 맥주와 프로레슬링과 고양이
그만두세요, 그런 짓
심오한 영수증의 세계
남의 장바구니
취미는 무엇입니까
의리를 돌려주세요
루비 진눈깨비
Are you NABANG?
Yes, I am NABANG!
바람 계곡의 가전
요리에 대하여
다큐멘터리 촬영
동화 오브 소개팅
모찌와 아가씨
숯가마 밥솥
귀여워서 운다
JIP★
JIP★2
순정만화식 연애 지침
오징어 전화기
3. 여행의 목적
오키나와 38도9분
간사이 슈퍼 생일
종합검진 아하하
라이브 de NIGHT
NO, NEWYORK
노, 뉴욕
뇌는 목욕 중
발리의 충격
발리와 마타기
발리에서 생긴 일
4. 뭔가에 감사하는 나날
퀴어를 다오
기적 체험! 비포 애프터
면허 그래듀에이션
푸른 눈동자
아네모네
서른 살 성인식 이론
뇌에 친절하게
작명 센스
액막이하러 갑니다
목이 심하네
편지
기억이 안 나
영어로 주름잡기
배움의 이유
유령 체험
뽀뽀라는 둥 잠자리라는 둥
움직인다, 감사하게도
고맙다는 말
맺음말
해설 니시 가나코의 ‘정직 렌즈’
리뷰
책속에서
오후에 부인과검진을 마치고 한 시간쯤 기다리면 검사 결과가 나옵니다. 종합검진을 받기 전에 간단히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설문조사 결과와 검사 결과를 비교하면서 선생님과 면담을 합니다. 이때 선생님은 저를 출근 전에 멋대로 검사를 받으러 온 물장사하는 여성으로 단정했습니다. 평일 오전에 거금을 내고 서른 줄의 여자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고 온다, 게다가 음주량이 보통이 아니다, 라니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나 봅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면”, “손님이 술을 권유하는 것은 알지만”,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고” 등등 변명할 여지 하나 주지 않고 단정적으로 대화를 끌고 나갔습니다. 귀찮아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직업이 뭐죠?”라고 한마디만 물어도 좋았을 텐데.
어중간한 선인의 가면을 쓰고 주변의 불행과 고통을 공유하는 척하다 금세 잊고 향락에 빠질 바에야 처음부터 “나는 그런 거랑 관계없어, 몰라”,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야”라고 선언하고 철저하게 악인이 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편이 훨씬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용기도 없어서 오늘도 망설임 없이 ‘뭔가 하고 싶어’, ‘이 일을 잊지 말자’ 생각합니다. 그리고 잊어버립니다.
저는 또 머릿결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에, 눈이 커 보이게 하는 것에, 피부가 좋아 보이게 하는 것에, 근사한 옷을 찾는 것에,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 남에게 칭찬을 받는 것에 열정을 쏟겠죠. “비데는 역시 좋아.” “어, 샐러드에 털이! 못 먹겠어.” “이 신발에 어울리는 매니큐어를 바르자.” “지금 내가 결단코 세계에서 제일로 불행해.”
이제 저에게 남은 것은 ‘수치’와 ‘감사’입니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못 먹겠어”라거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해”라고 말한 후에는 반드시 감사할 것. 살아 있음에, 살아 있음에,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것조차 잊어버리고 “기억이 안 나”라고 말하는 저와 만난다면,부디 저를 없애 주세요. 저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도 아까운, 진즉에 지구에 사는 생물로서 자격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이쯤 되면 역시나 앞에서 제가 제창했던 ‘서른 살 성인식 이론’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분명 젊은 것이 아니라 어렸던 것입니다. 매일 숨 쉬기만 해도 세포가 쑥쑥 크고 뇌가 팡팡 열려서 일부러 뭔가를 ‘배우고 싶어질’ 틈이 없었던 거죠. 저는 서른을 넘어서 겨우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고 세금을 걱정하고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과 날씨 얘기를 하며 그 자리를 적당히 넘어가면서.
스무 살 때 “오늘부터 어른입니다”란 말을 듣고 요 십 년 동안 무엇을 했나?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역시 성인식은 서른에 해야! 이렇게 말하면서도 마흔이 된 제가 “역시 성인식은 마흔에 해야!”라고 말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부디 그때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고 부르짖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