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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32520827
· 쪽수 : 352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21세기에 마주하는 성경
2장. 성경 자체의 이야기
3장. 성경의 자체적 증언
4장. 성경의 확실성을 신뢰할 수 있는가?
5장.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6장. 구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7장. 구약과 신약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8장. 신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9장.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10장.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가?
복습
책속에서
자발적으로 교장실을 들락거리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없다. 신하가 군주에게 오라 가라 지시할 수는 없다. 힘이나 권력을 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야 두 사람 간에 솔직하고 평화로운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물며 우주의 창조주이신 무한한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피조물 사이의 관계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양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하나님 존전에 느긋하게 나아간다거나 하나님을 우리 컴퓨터에 자료처럼 입력하여 종합적인 분석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추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해주시는 것뿐이다. 도덕적인 결함을 지닌 인간들이 완전무결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간격을 이어줄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을 계시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주장이다. 성경의 권위는 궁극적이며 유일한 권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이 자신의 성육신으로 시공간의 세계역사에 침투해 들어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기 계심으로 인해 그 왕국은 ‘이미’ 여기 임했다. 하지만 우주적 심판자이자 왕으로서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 나라는 완성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왕 되신 그리스도 통치의 축복은 이미 여기 우리들에게 완전하게 속해 있지만, 이 세상에서 아직 죄와 고난과 죽음에서 완전한 해방을 누리지는 못하기 때문에 아직 부분적으로만 그 복을 누릴 수 있다. 그 복은 장차 올 세상에서 온전히 우리 것이 될 것이다.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린 구약 성도들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 계시록이 인간 역사에 대한 분석과 하늘나라에 대한 환상들, 모든 악의 파멸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강조하며 우리 시선을 집중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기다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미 맛보기 시작한 모든 것을 완전히 영원토록 소유할 날을 기다리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경 이야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셈이다.
1970년대 로잔 선언문은 성경에 대해 “성경이 순수하게 단언하는 모든 부분에서 신뢰할 만하며 교리와 행위의 지침이 될 권위를 지닌다”고 했다. 이보다 먼저 이루어진 바티칸 2차 공의회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거룩한 저작물에 포함되기를 원하신 그 진리를 확실하고 신실하게 그리고 어떤 오류도 없이 가르친다”고 선언했다. 이런 선언문들은 믿음의 주요 교리에 영향을 미치는 않는 범위에서 성경에 실수가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묻고 싶다.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섭리로 개입하셔서 성경의 가장 중요한 영역의 메시지가 왜곡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면, 왜 세부적인 전체 내용에는 그런 왜곡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입하지 않으셨단 말인가? 그런 부분을 방치하셨다고 적당히 타협한다면, 도리어 성경이 진리임을 보장할 수 없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