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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요한복음

UBC 요한복음

램지 마이클스 (지은이), 전의우 (옮긴이)
  |  
성서유니온선교회
2016-12-26
  |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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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요한복음

책 정보

· 제목 : UBC 요한복음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32521183
· 쪽수 : 504쪽

목차

편집자 서문
감사의 글
약어표

서론
1. 생명의 말씀(1:1-18)
2. 첫 이틀: 세례 요한의 메시지(1:19-34)
3. 그다음 이틀: 제자들을 부르시다(1:35-51)
4. 마지막 이틀: 갈릴리 혼인 잔치(2:1-12)
5. 첫 번째 유월절(2:13-25)
6. 예수님과 니고데모(3:1-21)
7. 예수님과 세례 요한(3:22-30)
8.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3:31-36)
9.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4:1-42)
10. 예수님과 왕의 신하의 아들(4:43-54)
11. 베데스다 연못에서 병자를 고치시다(5:1-18)
12. 아버지와 아들(5:19-29)
13. 예수님의 증인들(5:30-47)
14. 5천 명을 먹이시다(6:1-15)
15.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다(6:16-25)
16. 예수, 생명의 떡(6:26-59)
17. 영생의 말씀(6:60-71)
18. 예수님과 그 형제들(7:1-13)
19. 예수님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다(7:14-27)
20.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7:28-36)
21. 절기 마지막 날(7:37-8:20)
22. 예수님과 믿지 않는 자들(8:21-29)
23. 예수님과 “믿는” 자들(8:30-59)
24.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9:1-12)
25. 심문(9:13-34)
26. 영적 맹인(9:35-41)
27. 예수, 선한 목자(10:1-21)
28. 예수님이 배척당하시다(10:22-39)
29. 베다니에서 베다니로(10:40-11:16)
30. 나사로를 살리시다(11:17-44)
31. 예수님에게 내린 판결(11:45-54)
32. 마지막 유월절(11:55-12:11)
33. 예루살렘 입성(12:12-19)
34.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시다(12:20-36)
35.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12:37-50)
36.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13:1-20)
37. 예수님이 자신이 배신당할 것을 예언하시다(13:21-30)
38. 결정적인 세 선언(13:31-35)
39. 떠나실 때가 임박하다 I(13:36-14:31)
40. 예수님의 사랑과 세상의 미움(15:1-16:4a)
41. 떠나실 때가 임박하다 II(16:4b-33)
42.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다(17:1-26)
43. 예수님이 잡히시다(18:1-14)
44. 예수님과 대제사장(18:15-27)
45. 빌라도와 예수님에 대한 판결(18:28-19:16a)
46.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장사되시다(19:16b-42)
47. 빈 무덤, 부활 후 첫 번째 나타나시다(20:1-18)
48. 부활 후 두 번째 나타나심과 그 속편(20:19-31)
49. 부활 후 세 번째 나타나시다(21:1-14)
50. 예수, 베드로, 사랑하시는 그 제자(21:15-25)

참고문헌

저자소개

램지 마이클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수년 동안 고든-콘웰 신학교와 사우스웨스트 미주리 주립대학교에서 신약을 가르쳤고, 지금도 포틀랜드에 있는 방골 신학교의 비상근 교수로 그리고 풀러 신학교의 방문 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그가 쓴 요한복음 주석이 저명한 요한신학 전문가 레온 모리스의 NICNT 시리즈 요한복음 주석을 대체할 정도로, 램지 마이클스는 요한복음 연구에서 인정받는 학자다. 지은 책으로는 NICNT 시리즈의 『요한복음』뿐 아니라, IVP 신약 주석 시리즈의 『요한계시록』, WBC 시리즈의 『베드로전서』 등 여러 주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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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우 (옮긴이)    정보 더보기
휠체어 장애인이다. 그에게 번역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자 목회이며 일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1993년부터 지금까지 번역으로 이 땅의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섬기며 16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회자가 70세에 은퇴하듯, 하나님께서 하락하시면 70세까지 곁눈질하지 않고 오롯이 번역만 하다가 은퇴하고픈 소망을 안고 추풍령 경상북도 김천에서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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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예수님은 가나에서 단 한 가지 기적을 행하고 가버나움에 짧게 머무신 후,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몰아내신다(2:13-22 참조). 다른 복음서들에 친숙한 독자가 보기에, 예수님의 수난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막 11:15-18 참조). 요한복음이 정말로 짧은 복음서라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런 인상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여러 차례 오가며 활동을 계속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12장에 가서야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며, 18장에 가서야 체포되신다. 2장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듯이, 그분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4절). 그러나 성전 정화 사건을 이렇게 이른 시기에 둔 것은 의도적이며, 그 효과는 이중적이다. 첫째, 이렇게 함으로써 뒤따르는 모든 것을 예수님의 임박한 수난의 그림자 아래 두며, 그분과 유대인들 간의 대화에 재판의 성격을 부여한다. 둘째, 이렇게 함으로써 가나 혼인 잔치 이야기를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전체를 대표하는 일종의 본보기나 모형으로 삼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전통적 정결 의식의 물을(6절) 새롭고 기쁜 메시아 시대의 포도주로 바꾸신다.
_4. 마지막 이틀: 갈릴리 혼인 잔치(2:1-12) 중에서

이런 기적들을 토대로, “많은 사람이…그의 이름을 믿었다”(23절). 겉보기에, 상황이 2:11과 매우 비슷하다. 갈수록 많은 제자들이 믿게 된다. 그러나 유사성은 진짜가 아니다. 이 유월절에 예수님을 “믿은” 자들의 믿음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내레이터는 ‘믿다’(believe) 또는 ‘신뢰하다’(trust)라는 단어(헬라어로 ‘피스튜에인’)로 언어유희를 하면서, 설령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trust)하더라도 예수님은 자신을 그들에게 의탁하지(trust) 않으셨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진짜로 여기지 않으셨다.
_5. 첫 번째 유월절(2:13-25) 중에서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데, 예수님이 이에 대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3, 5절). 영생은 단순히 끝없는 삶이 아니다. 영생은 죽은 후에 시작되는 삶도 아니다. 영생은 새로운 종류의 삶이며,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을 지금도 특징짓는 새로운 존재 질서다.
_6. 예수님과 니고데모(3:1-21) 중에서

참혹한 죽음의 언어(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는 필요를, 단지 예수님이 세상에 생명을 주려고 자기 생명을 내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아니라 그분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할 필요를 가리킨다.…“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53절) 것은 단지 예수님의 죽음이 주는 유익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종이자 제자가 됨으로써 그 죽음 자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분을 따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분의 사명과 운명을 공유하는 것이다. 핵심은 실제 순교가 필연이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다면 순교는 언제든 뚜렷한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_16. 예수, 생명의 떡(6:26-59) 중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렵도다”라며 “제자”들이 내뱉는 불평은(60절) 예수님의 가르침이 (문자적으로 식인 행위를 암시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예수님의 의미는 제자들에게 더 이상 모호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아주 분명하다. 참혹한 죽음의 자리까지 인자를 따르라는 것은 실제로 어려운 가르침이다!
_17. 영생의 말씀(6:60-71) 중에서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는 그가 죄악 중에 태어났다는 언급들로 틀이 짜여 있다(2, 34절). 이야기의 의도는 그가 죄악 중에 태어났음을 단언하려는 것도 아니고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며, 그의 치유를 사실상 거듭남을 구성할 만한 철저한 변화로 묘사하는 것이다. 여기에 마침내 니고데모와 상반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그리스도인 회심자이며, 그의 경험에 관해서는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가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면, 맹인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진정 “물과 성령으로 나…면”(3:5)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필연이라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_25. 심문(9:13-34) 중에서

만약 이 비유가 답하는 질문이 ‘누가 참 목자인가’라면(양들이 받아들이는 목자라는 것이 그 대답이라면), 이 결론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 선교의 유효성은 그분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데 달려 있지 않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하는지와 상관없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자 참 목자로 상정된다. 그렇다면, 이 비유가 다루는 질문은 ‘누가 참 목자인가’(대답은 분명히 예수다)가 아니라 ‘누가 양인가’(대답은 참 목자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이다)다. 10장에서, 목자가 아니라 양이 시험을 받는다. 예수님이 아니라 그분의 청중이 시험대에 오른다.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양 떼에 속했음을 증명했다.
_27. 예수, 선한 목자(10:1-21) 중에서

남은 문제는 왜 예수님이 이틀을 기다린(6절) 후에야 제자들을 데리고 유대 지역으로 돌아가셨는가이다.…솔직한 질문이 일어난다. 예수님은 더 큰 기적을 행할 기회를 잡으려고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일부러 기다리셨는가? 그랬을 법하지 않다. 더 나은 해법은 예수님이 어머니나(2:4) 형제들이 자신을 강제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듯이(7:6-10) 자신이 아주 사랑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 또한 자신을 강제하도록 허락하지 않으려 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이 기사는 예수님이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적극적 요청(initiatives)에 자주 반응하셨다는 정확한 기억을 보존하지만(이를테면, 4:46-54; 막 1:40-45; 7:24-30 참조) 그럴 경우라도 여전히 모든 인간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에 대한 책임에서 그렇게 하셨다는 요한복음의 특징적 주장과 함께 보존한다. 예수님은 도움을 구하는 모든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지만,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식으로 하신다.
_29. 베다니에서 베다니로(10:40-11:16) 중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와 그 유대인들이 우는 모습에 감정이 복받치신다. 슬픔(35절), 동요, 그리고 (놀랍게도) 분노가(33, 38절). 예수님은 마리아를 비롯해 함께 슬퍼하는 자들이 자제력을 잃었다며 그들에게 분노하신 것이 아닐뿐더러(이런 상황에서 소리 내어 우는 것은 자연스러웠고 예상되는 일이었다) 자신이 하실 일을 그들이 믿지 못하는 데 분노하신 것도 아니다(자신이 무엇을 하실지 그들이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죽음에, 모든 사람을 더러움과 수치에 사로잡아 두는 원수에 분노하셨다(히 2:14-15 참조).
_30. 나사로를 살리시다(11:17-44) 중에서

마리아는 무엇보다도 섬김(servanthood)의 모델이다. 마르다도 이런 역할을 한다(2절). 그러나 여기서는 마리아의 섬김이 강조된다. 마리아는 헌신을 무모하게 낭비했다고 인정받는다. 이런 면에서, 마리아는 누가
복음 7:36-50에 나오는 여자를 닮았다. 많은 양의 향유가 온 집을 향기로 채웠다(3절). 그러나 요한복음은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과 그분을 섬기는 그녀의 헌신을 가늠하는 척도일 뿐이다. 현재 단락과 예수님의 고별 강화 사이의 주된 유사점은 각각에서 섬김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위가(13:1-17 참조) 예수님이 반드시 떠나셔야 함을 드러낸다는 것이다(7-8절. 13:13; 13:36-14:31 참조). 가룟 유다가 두 상황 모두에 있다는 사실에 유사점은 한층 강화된다(4-6절. 13:2, 11, 21-30 참조).
_32. 마지막 유월절(11:52-12:11) 중에서

요한복음에서 선교는 십자가에 의해 실현된다. 십자가는 분명히 부활로 이어지고 부활에 의해 완결되지만, 선교는 본질적으로 십자가에 의해 실현된다(10:15-16; 11:51-52; 12:23-25 참조).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똑같이) 끌어당기는 자석 같다. 사람들을 이끄는 분이 예수든(32절) 아버지든 간에(6:44 참조), 그들은 십자가로, 십자가에 달린 자에게로 이끌린다. 십자가로 이끌린다는 말은 24-26절이(또는 6:53-58이)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은유로 표현되는 제자도의 길로 이끌린다는 뜻이다.
_34.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시다(12:20-36) 중에서

제자들이 서로를 위해 “목숨을 버릴” 방법은 하나가 아니듯이 제자들이 “서로의 발을 씻어 줄” 방법도 하나가 아니다. 서로 사랑이 열쇠다. 그러나 이 사랑은 물질적 도움, 친절한 행동, 잘못 용서하기, 박해로부터 보호하기, 심지어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죽음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자녀들에게 행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발 씻어 주기를 “본”(15절)이라고 하실 때 의미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 “씻음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 아니라(8절)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는” 것도 필요하다.
_36.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13:1-20) 중에서

예수님 안에 거하기가 구체적으로 서로 사랑하기로 정의된다면, 그 결과인 열매 맺기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자신 및 자신과 예수님의 관계를 영적으로 복제하기, 후대에 교회론적 의식이 강해진 그리스도인들이 전도(evangelism)라 부른 것으로 정의되어야 한다(12:24 참조. 한 알의 밀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에서 세계 복음화(evangelization of the world)는 세상 자체에서, 세상의 많은 사람을 향한 제자들의 의식적 사랑이나 연민에서 비롯되지 않고 제자들이 ‘집에 서’(in-house)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 예수님은 여전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5 참조). 9-17절 섹션 전체를 인접 문맥의 포도나무 비유에 대한 해석뿐 아니라 두 장 앞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을 되돌아보며 제시하는 중요한 설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다.
_40. 예수님의 사랑과 세상의 미움(15:1-16:4a) 중에서

교회에 적대적인 유대인들은 죄, 의, 심판에 대해 알 테지만, 이러한 정의들은 그들에게 새로울 것이다. 죄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며, 의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위해 행하신 일이고, 심판은 예수님이 이미 자신의 죽음으로 성취하신 것이다.
_41. 떠나실 때가 임박하다II(16:4b-33) 중에서

두 제자가 무덤에 달려가고 무엇인가를 본 기사는 신학적 이유에서 제시되지도 않았고, 둘 중 하나의 사도적 권위를 강화하려고 제시되지도 않았으며, 단지 목격 증인의 기억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가 먼저 무덤에 도착해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19:40 참조)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4-5절). 베드로는 무덤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본 것은 자세히 기술되지만(6-7절) 그의 반응은 기술되지 않는다. 마침내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가 무덤에 들어갔으며, 그의 반응이 기술된다. 그는 “보고 믿더라”(8절). 베드로는 보았으나 믿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내레이터가 베드로의 이야기는 외부 관찰자로서 들려주지만,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것일 뿐이다.
_47. 빈 무덤, 부활 후 첫 번째 나타나시다(20:1-18) 중에서

제자들은 거의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었으나(2:11 참조), 이 부활 후 만남에서 (도마로 대표되는) 제자 그룹은 처음 믿음을 표현한 후 다른 경우들에서 그렇게 했듯이(6:69; 16:30 참조) 다시 한 번 ‘믿었다’(28-29절). 내레이터는 이런 일이 자신의 독자들에게도 일어나게 하려 한다. 그에게 믿음은, 한 사람에게 한 번 왔다가 휴지 상태에 빠져 버리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야기와 새롭게 마주할 때 거듭 거듭 표현되는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다(4:50, 53 참조). 그러므로 부활 내러티브는, 요한복음 나머지 부분처럼, 이미 “믿는” 자들을 겨냥하는데, 그들로 그들의 믿음을 떠받치는 사건들을, 너무나 빠르게 흐릿하고 희미한 과거로 퇴보하는 듯 보였을 사건들을 새롭게 만나게 하기 위해서다.
_48. 부활 후 두 번째 나타나심과 그 속편(20:19-31) 중에서

은유를 지나치게 압박하면 혼란이 일어난다. “큰 물고기 백쉰세 마리”가 “그들의[제자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17:20)을 말한다면, 예수님이 곧바로 제자들에게 아침을, 즉 떡(빵)과 물고기를 먹으라고 하신 것은 어떻게 되는가?(12-13절) 이것은 식인(食人) 행위의 은유가 될 위험이 있다! 예수님이 식사로 물고기를 준비해 두신 것은 사실이다(9절).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10절)고도 말씀하신다. 혼란을 해소하는 쉬운 방법은 내레이터가 “생선”(물고기)을 뚜렷이 다른 두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첫째로 제자들의 선교로 생겨날 새로운 공동체를 가리키는 은유로 사용하며(10:16의 “한 무리” 참조), 둘째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 교제의 식탁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사용한다.
_49. 부활 후 세 번째 나타나시다(21:1-1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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