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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포용

배제와 포용

강영안, 미로슬라브 볼프 (지은이), 박세혁 (옮긴이)
  |  
IVP
2012-07-30
  |  
2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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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포용

책 정보

· 제목 : 배제와 포용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2812670
· 쪽수 : 560쪽

책 소개

'IVP 모던 클래식스' 11권. 예일 대학교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의 대표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오늘날 우리 문명이 직면한 중대한 문제 중 하나인 ‘정체성(identity)과 타자성(otherness)’의 문제를 탐구한다.

목차

머리말
서론: 십자가, 자아, 타자

제1부
1. 거리두기와 소속되기
2. 배제
3. 포용
4. 성 정체성

제2부
5. 억압과 정의
6. 기만과 진실
7. 폭력과 평화

해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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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찾아보기
성구 찾아보기
저자연보

저자소개

미로슬라브 볼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늘날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독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학교에서 고전 그리스어와 철학을, 개신교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B.A.). 이후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석사 학위(M.A.)를,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위르겐 몰트만의 지도로 박사 학위(Dr. theol.)와 교수 자격(Dr. theol. habil.)을 취득했다.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 예일 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면서 예일 신앙과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종교와 인류 공영의 문제, 지구화, 화해 등의 주제를 연구한다. 그의 저서 『배제와 포용』은 「크리스채너티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서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종교 서적으로 꼽혔으며, 이 책으로 2002년 그라베마이어 상(종교 분야)을 수상했다. 그 밖에 『광장에 선 기독교』 『행동하는 기독교』 『알라』 『인간의 번영』 『일과 성령』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이상 IVP), 『노동의 미래—미래의 노동』(한국신학연구소), 『베풂과 용서』(복있는사람), 『삼위일체와 교회』(새물결플러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국제제자훈련원)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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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Th.M.), 지금은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M.Div. 과정 중에 있다. 역서로는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살림), 「분별의 기술」(사랑플러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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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안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 벨기에 루뱅대학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네덜란드 레이든대학교, 계명대학교, 서강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다. 지금은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한동대학교 석좌교수와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철학신학 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칸트학회, 한국기독교철학회, 대한철학회, 한국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타인의 얼굴》, 《주체는 죽었는가》, 《자연과 자유 사이》, 《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 《강교수의 철학이야기》, 《읽는다는 것》, 《칸트의 형이상학과 표상적 사유》,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등 다수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신은 존재하는가》(공역), 《급변하는 흐름 속의 문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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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불가피하게도 이 보고서는 가장 추상적이고 어려운 내용을 다루는 부분에서조차도 대단히 개인적인 성격을 띠는데 , 이는 내가 감상적인 정서를 공적으로 마음껏 드러내려 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 책은 내가 내 정체성의 핵심을 건드리는 문제들과 지적으로 씨름한다는 의미에서 개인적이다 . 나는 막연하고 초연한 태도로 흥미로운 지적 퍼즐을 푸는 데는 관심이 없었으며, 불가능한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의 시민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나는 서재에 들어가기 전에 나의 헌신과 욕망, 저항, 분노, 불확실성을 외투처럼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가 하루의 작업이 끝나면 다시 집어서 입는 식으로 책을 쓸 수 없었다. 내 동족은 짐승처럼 짓밟히고 있었으며,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적합한 반응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어떻게 내가 나의 헌신, 욕망, 저항, 분노, 불확실성으로부터 시선을 회피할 수 있겠는가? 최대한 엄격하게 그것들을 곰곰이 따져 보아야 했다. 십자가의 메시지와 폭력의 세상 사이에 있는 긴장이 나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이를 따르고자 하는 바람과 다른 이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지켜보거나 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의 갈등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지적 투쟁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영적 여정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머리말, pp. 14-15)


이 세 가지 ‘해법’은 많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이 해법들은 사회적 구조(social arrangements)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 이런 제안에는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중요한 통찰이 담겨 있지만, 그 주된 관심은 사회적 행위자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다. 그와 대조적으로, 나는 사회적 행위자(social agent)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나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다름을 수용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타자와 조화롭게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나의 전제는 자아가 특정한 상황 하에 놓인다는 것이다. 즉, 자아는 여성이거나 남성이고, 유대인이거나 그리스인이고, 부자이거나 가난하다. 대개는 동시에 이 중에서 하나 이상에 해당하며 (‘부유한 그리스인 여성’), 혼종적(混種的) 정체성(‘유대계 그리스인’과 ‘남성-여성’)을 지니는 경우도 많고, 한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적 자아(situated selves)에 관해 내가 던지는 질문은 이러하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은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그들은 어떻게 타자와 평화를 유지해야 할까? (서문, pp. 29-30)


장군들을 제쳐두고 철학자들에게 귀를 기울이면 충돌하는 정의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철학자에게 ‘무엇이 정의로운가?’라고 묻는다면 그는 ‘누구의 정의 말인가?’ ‘어떤 정의 말인가?’라고 되물을 것이다. 미셸 푸코처럼 ‘정의’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제약 속에서 만들어진…이 세상의 것”(Foucault 1980, p. 131)이라고 주장하는 급진적인 포스트모던 사상가들만 이렇게 반문하는 게 아니다. 보수적인 공동체주의자들 역시 겉모양은 다르지만 유사한 반문을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정의에 대한 설명은 각각의 도덕적 탐구 전통에 자리잡고 있으며, 따라서 도덕적 탐구 전통의 숫자만큼 많은 수의 “정의”가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MacIntyre 1988). 포스트모던 사상가와 공동체주의자 모두, 충돌하는 정의라는 이 곤경을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조언 역시 충돌할 것이다. 장군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철학자들의 세계도 정의가 서로 경쟁하는 세계다.
우리는 무쇠로 된 절망의 삼단논법에 갇힌 것 같다. 전제 1: 정의의 관념은 특정한 문화와 전통에 달려 있다. 전제 2: 평화는 문화와 전통 사이의 정의에 달려 있다. 결론: 문화 사이의 폭력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가장 유능하고 잘 무장한 장군들이 지지하는 정의, 혹은 가장 효과적인 선전에 의해 내세워지는 정의가 지배할 것이라는 불편한 생각을 용인해야 하는가? 지배자의 정의가 지배적인 정의임을 인정해야 하는가? 평화를 위해 ‘차이’의 억압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평화’라는 이름 아래 폭력의 지배는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불의한 정의의 폭력을 벗어나는 길, 정의와 정의가 맞설 때 의로운 판단이 가능한 곳으로 나아갈 길이 존재하는가? (5.억압과 정의, pp.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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