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좋은 교사를 꿈꾸다

좋은 교사를 꿈꾸다

(기독교적 수업을 향한 한 교사의 평생 분투기)

소종화 (지은이)
  |  
IVP
2014-08-01
  |  
13,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11,700원 -10% 0원 650원 11,05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좋은 교사를 꿈꾸다

책 정보

· 제목 : 좋은 교사를 꿈꾸다 (기독교적 수업을 향한 한 교사의 평생 분투기)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교육
· ISBN : 9788932813608
· 쪽수 : 246쪽

책 소개

기독 교사 운동에 헌신해 온 저자의 다양한 도전과 시도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던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통해 기독교적 수업과 관련된 교사들의 고민과 문제의 핵심을 집어내고, 학교 현장에 적용 가능한 기독교적 수업의 실체를 보고 만질 수 있게 되었다.

목차

들어가며
1부 기독교적 수업을 향한 탐구
1. 좋은 교사를 꿈꾸다
2. 좋은 교사의 꿈이 깊어지다
3. 기독교적 수업을 찾아 나서다
*읽을거리: 비기독교적 가르침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오해
4. 실패에서 기독교적 수업의 단서를 얻다
*읽을거리: 기독교적 수업은 능력이 있다는 오해
5. 기독교적 수업을 향한 또 다른 탐구
*읽을거리: 윤리적 가치를 꼭 제시해야 한다는 오해
6. 탐구 여정을 돌아보며

2부 더 나은 기독교적 수업을 향한 제안
7. ‘기독교적’이란 무엇인가?
8. 기독교적 수업이란 무엇인가?
9. 무엇이 기독교적 가르침을 만드는가?
10. 공립학교 또는 기독교 학교에서 기독교적으로 가르치기

나가며
감사의 글

부록

저자소개

소종화 (지은이)    정보 더보기
펼치기

책속에서

참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구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때였다. 재단이나 관리자가 신앙의 이름으로 학교 교육, 교권을 손상시킨다고 생각되면 마찰도 불사하고 ‘이 학교는 미션스쿨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학교 교육을 실천하고 인사 및 행정, 그리고 재정이 기독교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동료 교사들과 많이 어울렸다. 가정을 돌보기보다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그들을 위로하고, 학생들과 어울리며 교사로서 많은 영향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지 나는 곧바로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허무는 삶의 애착을 없애고 냉소를 불러오며 도덕과 타락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당시 나는 어떤 것도 판단하기 귀찮아졌다. 산다는 것 자체가 그저 그랬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회의가 되었다. 나의 노력이 개인이나 사회를 한 번에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의도한 대로 변화가 되지 않자 갑자기 허무에 취해 버렸던 것이다.(아주 친한 사람들을 제외하곤 주변에서 나의 이런 생각을 몰랐다. 겉으로는 일상적인 일들을 무난하게 하고 있었으니까).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정을 챙기지 않았고 동료들과 밤늦게 어울리기 일쑤였다. 나중에야 나는 구조를 바꾸려는 싸움이 이렇듯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허무로 몰아넣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보다 못한 아내는 나에게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본 내 모습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다. 학생을 가르치고 동료 교사들을 돌본다는 명분으로 바빠진 나의 삶이 가족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나 자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하나씩 사례를 들어가며 말을 했다. 곁에서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조언은 위로로 다가왔고 아내의 조언을 계기로 내 생각과 행동을 차분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가장 먼저 아내와 결혼 전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나는 교사로서 정직하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평생 가난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을 돈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약속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 때문에 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 좋은 교사를 꿈꾸며 첫 출근할 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했던 기도를 떠올렸다. “내가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매일 조용한 시간을 찾아 묵상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_ 1장 ‘좋은 교사를 꿈꾸다’ 중에서


“인격적으로 훌륭한 교사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지식을 가르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빈자리가 생깁니다. 교실에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교육 활동의 전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교과 지식을 가르칠 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지식은 단순히 앎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의 틀, 즉 세계관을 제공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나는 지식이란 교과에 따라 객관적일수도 주관적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나 역사 교과서의 경우 저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술될 수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교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에 따라 기술되는 수학이나 자연 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의 경우 지식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주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날 모임이 있고 난 후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지식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재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지식은 선하게 사용하면 좋은 것이고 자신의 탐욕을 위해 악하게 사용하면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식 ‘자체’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식이어야 한다니! 그렇다고 이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은 당연하니까. 그래서 마음이 복잡했다. 나를 지탱해 온 기독 교사로서의 정체성이 단번에 무너질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그동안 학급 운영 및 생활 지도뿐 아니라 선교중창단, 성경공부, 제자반 운영, 기도회 인도 등의 활동을 통해 나름대로 기독 교사다운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속적인 교과 지식을 가르쳐 학생들이 하나님을 배반하며 살도록 안내하였다니….
그날 밤, 나는 김윤권 선생과 새벽까지 치열하게 토론을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동안 내가 가르친 수업에 대해 변호했다. 그 이후를 한 동안 끙끙 앓으며 큰 상실감으로 힘들어 했다.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것이 잘못된 가르침이라니…. 단순하게 잘못된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척하는 가르침이 될 수도 있었다니….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감정과 생각으로 내 가슴은 복잡했다. 온몸에 힘이 빠졌고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회한이 병이 되어 시름시름 앓았다. 그렇게 한참 앓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곤 이렇게 다짐했다. ‘그동안의 잘못된 가르침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바르게 가르치자.’ ‘무너진 공든 탑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부터 무너지지 않을 탑을 쌓자.’ 기독교적으로 교과를 가르치는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_ 2장 ‘좋은 교사의 꿈이 깊어지다’ 중에서


기독교적 수업을 고민하던 초기의 나는 비기독 교사의 수업과 기독 교사의 수업이 달라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알레고리적 해석도 하고, 성경 말씀을 지식에 연결하는 이상한 방법도 시도했다. 이 작업은 내게서 배움의 기쁨을 빼앗았다.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이라고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쳤고 수업은 재미없어졌다. 교과를 기독교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면서도 내 수업이 기독교적이라고 확신도 할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 ‘성령’ 등의 단어로 구분하는 것 말고 비기독 교사의 수업과 구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당시 나는 이미 지식과 가치를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기독교적 수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괜히 그것이 기독교적 수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적 교육이라고 할 때 학생들이 성경적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기독교적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나의 이야기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주장일 수도 있다. (중략)
중요한 사실은 기독교인으로서 비기독교인 교사와 똑같이 가르치더라도 그 내용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성경적 전제와 같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의 수업으로 표현되든지 기독교적 수업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적 가르침과 비기독교적 가르침의 ‘구별’은 ‘전제’에 있다. 그 전제가 수업에서 드러날 수도 있고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독 교사와 비기독교인 교사의 수업이 ‘구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성경적 관점에서 문제가 없으면 그 수업은 비록 비기독교인 교사의 수업과 구별이 되지 않더라도 기독교적 수업인 것이다!
_ ‘읽을거리: 비기독교적 수업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오해’ 중에서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