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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알라 (재정가 특별판)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은이), 백지윤 (옮긴이)
  |  
IVP
2016-01-04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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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책 정보

· 제목 : 알라 (재정가 특별판)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종교일반 > 종교의 이해
· ISBN : 9788932814308
· 쪽수 : 416쪽

책 소개

평화와 화해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신을 예배한다고 주장한다. 각 종교가 서로의 차이를 내세워 대립하고 배타하기보다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성으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목차

들어가는 말 유일하신 하나님과 깊은 간극 11

1부 논쟁, 그 과거와 현재
1. 교황과 왕자: 신, 깊은 간극 그리고 다리 놓기 33
2. 가톨릭 추기경과 모든 이의 유일하신 하나님 59
3.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와 튀르크인의 하나님 85

2부 두 신 아니면 한 신?
4.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109
5. 공통의 신과 믿음의 문제 129
6. 공통의 신과 실천의 문제 149

3부 결정적 주제: 삼위일체와 사랑
7. 유일신과 성삼위일체 171
8. 하나님의 자비 199
9. 영원하며 조건 없는 사랑 217

4부 같은 지붕 아래 살기
10. 같은 신, 같은 종교? 247
11. 편견, 개종 그리고 협력 관계 265
12. 두 신앙, 공통의 신, 하나의 정부 287
13. 신에 대한 경외심과 공공선 313
맺는말 현실 직시: 극단주의와의 싸움 333

감사의 말 343
주 347
인명 찾아보기 395
주제 찾아보기 399
성경 찾아보기 411
꾸란 찾아보기 413

저자소개

미로슬라브 볼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늘날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독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학교에서 고전 그리스어와 철학을, 개신교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B.A.). 이후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석사 학위(M.A.)를,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위르겐 몰트만의 지도로 박사 학위(Dr. theol.)와 교수 자격(Dr. theol. habil.)을 취득했다.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현재 예일 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면서 예일 신앙과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종교와 인류 공영의 문제, 지구화, 화해 등의 주제를 연구한다. 그의 저서 『배제와 포용』은 「크리스채너티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서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종교 서적으로 꼽혔으며, 이 책으로 2002년 그라베마이어 상(종교 분야)을 수상했다. 그 밖에 『광장에 선 기독교』 『행동하는 기독교』 『알라』 『인간의 번영』 『일과 성령』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이상 IVP), 『노동의 미래—미래의 노동』(한국신학연구소), 『베풂과 용서』(복있는사람), 『삼위일체와 교회』(새물결플러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국제제자훈련원)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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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윤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술대학원에서 미술 이론을,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에서 기독교 문화학을 공부했다. 2023년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살면서,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 종말론적 긴장, 창조와 새창조, 인간의 의미 그리고 이 모든 주제에 대해 문화와 예술이 갖는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손에 잡히는 바울』 『이것이 복음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신약의 기도』 『오늘이라는 예배』 『밤에 드리는 기도』 『알라』 『일과 성령』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 『바보와 이단』 『돈은 중요하다』 『BST 스가랴』 『BST 예레미야애가』(이상 IVP)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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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신’은 무슬림과 기독교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어떤 기독교인은 무슬림이 섬기는 신은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는 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분쟁으로 이어진다. 신은 양쪽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_들어가는 말

기독교인이나 무슬림 모두 사회적 화합에 필요하다고 해서 자신들을 위해 신을 디자인할 수는 없다! 종교 공동체인 양 진영은 신에 대한 한 가지 주장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바로 신이 신이라는 사실, 신은 주권자 창조주이며, 인간의 필요나 상상에 따라 디자인되고 변형될 수 있는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두 신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신이 동일한지 밝혀 내는 것이어야 한다. 기독교인은 무슬림을 대신해 질문을 결정할 수 없고, 무슬림 역시 기독교인을 위해 질문에 답해 줄 수 없다. 그들 각자가 신의 계시라고 믿는 것들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각자 질문을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탐구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최종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과연 꾸란의 하나님과 동일한가? 많은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달려 있다.
_1장 교황과 왕자: 신, 깊은 간극 그리고 다리 놓기

신과 성삼위일체에 관하여 무슬림이 거부하는 모든 것을 기독교인 역시 거부한다. 바로 이것이 니콜라우스의 첫 번째 핵심 주장이다. 그의 두 번째 주장은 아마도 논쟁의 여지가 더 많을 것 같은데, 기독교인이 삼위일체에 대하여 인정하는 모든 것을 무슬림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_2장. 가톨릭 추기경과 모든 이의 유일하신 하나님

루터는 무슬림이 삼위일체를 부정할지라도 그들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루터의 하나님은 문화적이거나 정치적으로 규정된 충돌 너머에 존재하시기 때문에, 종교적·도덕적·문화적인 성취의 중요성은 상대화되고, 다른 이들을 위한 조건 없는 돌봄―하나님의 돌봄뿐 아니라 인간의 돌봄―이 갖는 중요성은 커진다. 둘째, 루터는 하나님에 대한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견해―심지어 루터 자신이 규정하는 방식의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인 견해―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일차 관심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는 문제에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는 이러한 주요 공통점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의 다혈질적이고 편향적인 성격이 주는 압력, 그의 묵시론적 신학의 틀이 갖는 배타성, 강력한 오스만의 군대가 ‘바로 문 앞에’ 다가와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루터가 그러한 중요한 공통점에 대해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동일한 신을 믿는다는 그의 신념은 이러한 일단의 강력한 반대 기제조차도 이길 만큼 충분히 확고했다.
_3장.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와 튀르크인의 하나님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유명한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라고 썼다(13:6). ‘차이점’ 접근을 따르는 이들은 불의를 기뻐하는 사람과 같다. ‘유사성’ 접근을 따르는 이들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상대방의 좋은 점은 보지 않고 늘 잘못만 지적해 대는 잔소리꾼 파트너인데 반해, 후자는 너그럽고 지혜롭게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잘못에 눈을 감지는 않지만 잘한 일은 함께 기뻐해 준다. 기독교인은 무슬림이 신을 이해하는 방식 안에 혹 어떠한 진리라도 담겨 있는 것을 본다면 그것을 기뻐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동일한 하나님을 예배하는가 하는 문제에 ‘유사성’의 접근을 시도할 때만 가능하다.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되 중요한 차이점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태도가 지녀야 할 동전의 양면이다.
_4장.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신에 대한 다음 여섯 가지 주장에 서로 동의한다.
1. 신은 오직 한 분이시다.
2. 신은 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창조했다.
3. 신은 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과 완전히 다르다.
4. 신은 선하시다.
5. 신은 우리의 모든 존재를 다해 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6. 신은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 여섯 가지의 주장에 대한 동의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예배 대상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가져온다. 신을 묘사하는 처음의 네 조항은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예배하는 대상이 동일하다는 주장을 입증해 준다. 신의 핵심 계명을 집약하는 나머지 두 가지 조항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강화한다.
_5장. 공통의 신과 믿음의 문제

좋은 행위와 그릇된 행위는 그들이 실제로 예배하는 신을 보여 주는, 믿음보다 더 정확한 지표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이 세상의 거짓 신을 예배할 수도 있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있다.
_6장. 공통의 신과 실천의 문제

만약 무슬림이 기독교와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이유들이 타당하다면, 그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 대신 우리는 무슬림이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본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이 논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그것이 무슬림에게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본질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념에 덧붙여진 선택 사항에 불과한가? 자동차 옵션을 선택하듯, 유대인과 무슬림은 기본 옵션만 장착한 단일주의 버전의 하나님을, 기독교인은 동일한 하나님의 ‘풀 옵션’인 삼위일체 버전을 선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 전체에서, 선택적 부가사항이 아닌 가장 중심이 되는 교리다. 하나님의 본성에서 삼위일체를 제거해 버리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믿는 기독교인의 믿음이 무너지고, 이는 곧 기독교 신앙 전체의 괴멸로 이어진다. 삼위일체는 덧붙여진 추가 사항이 아니며 유일하신 하나님의 충만한 실재다. 이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고도 예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기독교인은 그렇게 단언한다), 그것은 언제나 불완전한 예배다.
_7장. 유일신과 성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을 향한 사랑과 모든 창조물에게 베푸는 자비 ?우리는 이 두 가지 큰 틀 안에서, 꾸란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들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구분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랑이 많은 자비’는 하나님의 본성이기에,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자비롭다. 친절함을 통해서든, 엄격함을 통해서든, 꾸란에 따르면 하나님의 자비는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까지도 하나님에게 돌아오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은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도 자비롭다고 볼 수 있다. 무슬림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에 동의하는 한, 기독교인들이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이 문제에 대해 둘 간에는 상당한 공통 기반이 생기는 것이다.
_9장. 영원하며 조건 없는 사랑

쾌락 추구를 중심축으로 돌고 도는 인생을 사는 것은 중대한 문화적 위기를 잘 보여 준다. 문제점은 주로 서양 ‘문명’에서 드러나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화의 날개를 타고(동일한 날개를 타고 엄청난 양의 제품이 운반되는 것처럼!) 세계 각지로 퍼지고 있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단순한 쾌락 추구의 무익함과 파괴성을 폭로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며 진정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일을 위해 서로 동지가 될 수 있다.…교회 첨탑은 모스크의 미나레트가 아니고, 모스크의 미나레트는 교회 첨탑이 아니다. 비록 첨탑과 미나레트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비슷하게 이해하는 그들 공통의 신을 서로 다른 모양으로 가리키고는 있지만, 적어도 단순한 쾌락 추구를 좋은 인생의 표지로 삼는 것으로부터 돌아서 있는 것만큼은 동일하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동시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함께 저항하는 것이, 각각 가장 이롭다고 믿는 것을 위해 서로 싸우는 것보다 훨씬 낫다.
_11장. 편견, 개종 그리고 협력 관계

많은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다음의 세 가지 명제에 헌신되어 있다.
1. 유일하고 자비로운 신과 모든 사람의 관계는 동등한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2. 이웃 사랑은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가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자유를 다른 이들에게도 허용하도록 요구한다.
3. 신앙의 문제에서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이 세 가지 명제를 따른다면, 논리적으로 그들은 정치적 다원주의를 따르는 것이다. 그들이 종교적 배타주의자냐 종교적 다원주의자냐 하는 것은 어떤 차이도 가져오지 못한다. 이러한 명제를 받아들이는 종교적 배타주의자는, 그가 일관적이기만 하다면 정치적 다원주의자일 것이다.
_12장. 두 신앙, 공통의 신, 하나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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