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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2816975
· 쪽수 : 120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_위대한 전통의 일부가 되자!
정통신학과 플라톤주의
중세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종교개혁 신학과 인문주의
자유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포스트모던 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기독교 신학의 본질과 사명
신의 죽음과 그 이후의 풍경들
위험사회와 유동하는 공포
실리콘밸리가 만든 신흥 종교
무신론적 인본주의의 불가능성
작은 이야기가 낳은 폭력
부러진 모세의 지팡이
공허와 맹목 사이로 난 길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한 가치, 온전한 신학을 위하여
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다른 어떤 학문보다 드높은 이상을 추구하고, 다른 어떤 학문보다 폭넓은 가치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학문이 그 바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기독교 신학은 제일 학문입니다. 나는 적어도 이 점에서는 우리가 기독교 신학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자부심은 지난 2천 년 동안 사도들과 순교자들 그리고 위대한 신학자들과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기 위해 목숨 바쳐 지켜 온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우리도 긍지를 갖고 이 위대한 전통의 일부가 되자고 독자들에게 권하기 위해 이 작은 책을 썼습니다.
“머리말”에서
이러한 현상은 일찍이 ‘라틴 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220)가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카데미와 교회 사이에 무슨 일치가 있는가?”라고 외쳤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 주장이 근대 이후부터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근래에는 “그리스도인이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형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에서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스의 고대 철학과 히브리의 신흥 종교의 만남은 역사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발생한 우연한 사건이었고, 이 둘의 완전한 결합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지요.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릅니다. 이 둘의 만남은 마치 하나님이 기독교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것처럼 보이지요. 왜냐하면 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인 이론들을 그리스 철학이 플라톤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개발해 갈고닦아 왔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이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을 “예수가 탄생하기 400년이나 전에 존재한 그리스도인” 또는 “그리스어로 저술한 모세”라고 칭송한 것이 바로 그래서입니다
“정통신학과 플라톤주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