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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32817293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추모의 글 9
개정판 서문 17
1. 말들과 어떻게 경주하겠느냐? 21
2. 예레미야 35
3. 이전에 53
4. 저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71
5. 거짓말을 믿지 마라 89
6.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거라 107
7.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때리다 123
8. 낫지 않는 나의 상처 139
9. 이십삼 년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159
10. 두루마리를 구해서 적어라 175
11. 레갑 가문 189
12. 포로에게 보내는 편지 205
13. 수문장, 왕, 왕궁 관리 221
14. 나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샀다 235
15. 이방 민족들에 관한 메시지 251
16. 너희는 그 땅에서 죽을 것이라 267
주 283
책속에서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메시지, 창조와 구원과 해방의 놀라운 이야기가 우리 일상의 삶이라는 소박한 질그릇에 맡겨졌습니다(고후 4장).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부서진 몸이 바로 좋은 소식을 담은 그릇입니다. 우리는 모두 금이 간 단지들입니다. 물이 새는 단지들이지요. 이는 복을 흘러 나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우리에게 가르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신앙생활에 관한 모든 것은 실제로 살아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어떤 개념을 경험으로 옮길 수 없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추상적 개념은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로막는 적입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둔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정말 잘 통합된, 일관성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으깬 감자 요리를 만들어 가족에게 대접했던 그분은 일요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 교인들에게 대접했던 바로 그 목사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선포했던 메시지를 몸으로 실천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몸은 거룩한 성전이었고, 거룩한 분이 사시는 거처였으며, 하나님의 영을 담은 그릇이었습니다.
내가 참말을 하고 있음을 아는 것은 아버지에게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난 만큼 그 증거가 뚜렷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랑, 기쁨, 평안,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담은 그릇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런 은사들을 담은 흠 있는 금간 그릇, 결코 그냥 저장해 두지 않고 늘 새는 그런 그릇이었습니다. 얼마나 거룩한 단지였는지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나아가, 그의 많은 책들은 우리를 위해 쓴 글을 담은 튼튼한 그릇이었습니다. 진리와 은혜가 가득한 영감 받은 글. 우리가 오랫동안 귀하게 여길 그런 글들 말입니다.”
_추모의 글 중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형편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악하게 산다기보다는 허망하게 살아가는 모습 말이다. 비참하게 산다기보다는 미련하게 사는 모습. 우리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을 보면 흠모할 만한 면이 거의 없고 본받을 점은 더더욱 없다. 주변에 유명 인사들은 있으나 성인saint은 전무한 형편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불면증 환자처럼 지루함이란 질병에 걸린 전 국민을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쓴다.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겁먹은 순응주의자들의 공격성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성격 나쁜 유별난 운동선수들이 게으르고 냉담한 구경꾼을 대신해서 경기를 치른다. 아무런 목표도 없고 싫증 난 이들이 하잘것없는 소일거리와 쓰레기 같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선한 일을 위한 모험이나 의로운 것을 추구하는 행위, 그 어느 것도 주요 뉴스거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성경이 지닌 이 같은 양면적 특징?탁월성을 향해 열정을 품도록 촉구하는 역량과 더불어 이른바 인간의 성취 자체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은 특히 예레미야서를 대할 때 강력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클렌스 브룩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점점 더 비인간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자신을 하나의 인간으로 인식하기 위하여, 즉 한갓 사물처럼 표류하는 존재가 아니라 책임 있는 도덕적 존재로 행동하기 위해서 인간의 형상을 찾고 있다.’
내게는 예레미야가 바로 그런 ‘인간의 형상’ 곧 탁월성이 구현된 인생이다. 이는 그리스인이 ‘아레테’라고 불렀던 것이다. 예레미야의 경우에는 그 탁월성이 믿음의 삶에서, 자아보다 하나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데서 나오는 것임이 분명하고, 어떤 위로나 존경 혹은 업적과는 거의 상관없음이 분명하다. 한결같은 삶을 살았으나, 그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교만이나 출세 의식 혹은 개인적 성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예레미야는 내게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자기 자랑, 자기만족, 자아 수양을 통하여 그렇게 되려는 시도는 철저히 봉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