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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910635
· 쪽수 : 520쪽
책 소개
목차
영원한 친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이 시대의 목소리
리뷰
책속에서
「하인이 와서 마님이 아이를 낳으려 한다는 소식을 전했던 날 아침에는 - 바로 여기 있는 아이죠 - 아주 〈정상적인〉 인도의 태양이 연병장 위에 떠오르고 있었지요.」
여기까지 말하고 소령은 연극적으로 잠깐 뜸을 들였다. 훗날 먼디가 배워 써먹는 기술이었다. 소령은 잔을 신비스럽게 들고 머리를 살짝 수그려 잔에 입술을 댔다.
「하지만 말입니다.」 소령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아이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그렇지 않았죠.」 그는 비난하듯이 먼디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하지만 강렬한 푸른 눈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어미 배 속에 열나흘이나 더 갇혀 있다가 드디어 머리를 내민 거죠! 아무튼 그날 연병장 위에 떠오른 태양은 이제 인도의 태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땐 파키스탄 자치령의 태양이 되고 말았죠. 그랬지, 그렇지 않았냐?」
[……]
소령이 눈물을 흘릴 이유는 충분했다. 골든 스완 바의 손님들도 잘 알고 있듯이 파키스탄이 탄생하던 날 그는 직업을 잃었을 뿐 아니라, 출산일을 훌쩍 넘긴 장기간의 난산으로 고생하던 아내가 인도 왕국처럼 운명을 다했던 것이다.
사샤는 여전히 연단 위에 서서 전언을 외치고 있었다. 이제 돼지들은 사샤를 곤봉으로 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접근했고, 아주 뚱뚱한 경사가 고함을 질렀다. 「이 못생긴 난쟁이 새끼를 잡아 와!」 먼디는 이제까지 한 번도 꿈꿔 보지 않았고 계획은 해도 실행은 하지 못했을 일을 했다. 기마대원 스무 명을 물리쳐 파키스탄 명예 훈장인지 뭔지를 받은 아서 먼디 소령의 아들은 이제 적진으로 돌격했다. 하지만 그가 손에 집은 것은 경기관총이 아니라 사샤였다. 리걸 유디트의 명령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충동을 맹목적으로 따라 먼디는 사샤를 연단에서 홱 들어 올려 어깨에 둘러멨다. 발버둥치는 사샤의 다리를 한 손으로, 휘젓는 손은 다른 한 손으로 누르고 적의 최루 가스와 고함치는 군중, 피 흘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나아갔다. [……] 그리하여 결국 두 손에 수갑이 채워져 머리 위에 있는 기둥에 묶인 채 경찰차에 앉아 있게 된 사람은 사샤가 아니라 먼디였다. 경찰관 두 명이 번갈아 가며 정신이 멍해지도록 그를 두들겨 팼다. 테드 먼디는 아인게블로이트를 체험했고,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사샤가 번역해 줄 필요가 없었다.
연기도 없고 조명도 없었다. 그저 아주 마르고 아주 작은 사샤였다. 머리는 짧게 자르고 푹 팬 눈은 전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장의사 같은 검은 양복에 보이스카우트 같은 갈색 넥타이를 맨 사샤. 왼손에는 당에서 나눠 주는 인조 가죽 서류 가방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그저 옆구리에 붙인 차렷 자세로 홍예문 아래에 구부정하게 서 있다. 마치 연출자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 같았다. 왼손으로는 가방을 들고 오른손은 그렇게 내리고 있어. 그다음에 테디를 기분 나쁜 눈빛으로 쳐다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