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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32910970
· 쪽수 : 318쪽
책 소개
목차
예쁜 소녀
시체 연못
투르 드 프랑스
오직 외로운 이들만이
아버지의 새 애인
엄마 얘기를 꼭 해야 하나?
드 펠흐림 정신 병원
수집가
회복된 환자
후손의 탄생
민속학자를 위해서 마셔라
내 아들의 삼촌
옮긴이의 말 웃음이거나 혹은 눈물이거나
리뷰
책속에서
“개 같은 인생이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매일 오후가 되면 실비의 눈앞에서 아버지랑 삼촌들이 아침 먹으러 슬슬 방에서 기어 나온다. 그들은 정해진 순서인양 일어나자마자 하루의 첫 담배를 피운 다음에, 지난밤의 술독에서 깨야한다는 명목으로 간 생고기와 고등어통조림을 아구아구 먹어댔다. 통조림의 고등어조각에서 기름이 흘러 턱을 따라 뚝뚝 떨어지면, 그걸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게을러터진 건 아니므로 올이 다 풀린 스웨터 소매를 이용해서 쓱 닦아냈다. 그런 다음 온다 간다 말없이 사라졌다가, 몇 시간 후 다시 술에 고주망태가 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삶의 상태를 악순환이라고 묘사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냥 자연스러운 순환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에 있을 동안 실비는 자기 아버지가 찾아올까 봐 삼 주일 동안 학교에도 가지 않으면서, 때에 찌든 부엌 식탁에서 내가 온몸을 비비꼬며 벌칙으로 받아온 숙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동안 실비는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책은 그녀를 더욱 똑똑하고 어휘력이 풍부한 소녀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그녀와 나머지 친척들과의 간극을 더욱 크게 벌여놓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밤에 침대에 누운 그녀는 두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천장을 응시하면서 좀처럼 잠들지 못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 낼 수가 있었다. 바로 옆 침대에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때로는 더러운 양말을 벗지도 않고 곯아떨어진 우리 아버지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면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어떤 때는 거기에 포트렐 삼촌의 박박 이가는 소리가 섞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주워 모아 빨랫감 속에 쑤셔 박기 전까지는 침실 바닥에서 몇날 며칠이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우리의 넝마쪼가리 옷가지들이 실비는 역겨웠을 것이다. 침대 곁 재떨이에 쌓인 누리끼리한 담배꽁초와 땀에 전 담요, 그리고 밤새 고약한 고린내를 풍기던 아버지의 양말 중에서 무엇이 그녀를 가장 진저리치게 만들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실비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사는 꼬락서니에 대해서 그녀가 이러쿵저러쿵 내게 불평이라도 했다면,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사촌과 사촌으로서 마음을 터놓고 말이다, 그랬다면 내 입장에서는 훨씬 더 상처가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직 침묵했고, 말없이 우리를 경멸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