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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911007
· 쪽수 : 365쪽
책 소개
책속에서
「<왜 자살을 하지?>라는 일반적인 질문을, 널 위해 역으로 물어본다면 이런 거야. 앞의 질문보단 덜 캐묻는 질문인데, <왜 자살을 안 하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지. 건방진 질문이지만 살아가다 보면 이런 질문을 피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단다.」
네이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길 해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가식적으로 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어색한 위로를 받는 게 아니라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냥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을 말한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마이키의 어깨 너머 창가 자리에 물 빠진 비싼 청바지와 팔꿈치에 패치를 댄 스웨터를 입은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보였다. 젊은 남자는 잡지를 휙휙 넘기고 있었는데, 귀에 낀 이어폰의 하얀 선은 셔츠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고, 옆에는 노트북이 열려 있었다. 요즘 이런 사람들이 사방에서 보였다.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애어른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유주의적이고 세련된 태도로 더그를 이러쿵저러쿵 비판해 대면서, 더그가 이뤄 놓은 모든 일들을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놈들. 자신들의 무능함을 보상받기 위해, 과거를 미래라고 속이고 파는 엉터리 소비주의에 아부하는 것에 불과한, 고매한 의견을 늘어놓는 자들. 그런 모든 것에 과연 누가 돈을 댔지?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신용 카드와 학생 융자로 돈을 빌려 준 게 누구냐고! 은행 말고 또 누가 있어? 그런데 저 자식이 지금 읽고 있는 건 뭐야? 『지큐』 아니면 『맨즈 헬스』? 불알에 난 털을 예쁘게 미는 법이나, 눈썹을 족집게로 뽑는 법, 아니면 물렁물렁한 뱃살을 조각 같은 근육으로 만들어 주는 법에 대한 기사라도 읽는 건가? 뭔가를 발라 반짝거리는 그 남자의 머리카락은 아주 세심하게 헝클어졌고, 곱슬머리 한 가닥이 미리 계산된 각도로 이마에 내려와 있었다.
「넌 정말 어마어마한 익명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구나.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군중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말이지. 난 그게 항상 흥미로웠어. 네가 한 일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면 말이지. 그들은 결코 네가 누군지 모를 거라는 사실 말이야. 물론, 아빠도 사건을 다루긴 했지만 아빠는 적어도 피고들을 만났잖아. 모든 것은 상대적인 거야. 널 비난하는 게 아니야. 난 단지 가끔 그게 너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 이미 너에게 끼친 영향도 궁금하고. 추상적 개념으로, 숫자로 살아가는 인생 말이야. 물론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 신문을 읽으면 나오잖아. 지진으로 만 명 죽은 게 무슨 의미야? 아무 의미도 없지. 의미가 있을 수 없어. 특정 사실에 대해 안다는 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하지만 너의 추상적 개념, 너의 금리 수치, 그것들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잖아. 그런데도 사람들은 네가 누군지 결코 모를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