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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911465
· 쪽수 : 384쪽
책 소개
목차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인간이라는 심연,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한 사제의 기이한 순교담
그레이엄 그린 연보
리뷰
책속에서
습한 냄새가 사방에서 올라왔다. 지구가 우주 공간 속으로 떨어져 나올 때의 화염에도 그 습기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래 봐야 이 끔찍한 지역의 안개와 구름만 겨우 빨아들였을 뿐이리라. 쭉쭉 미끄러지는 노새 위에서 아래위로 흔들거리며 그는 브랜디로 굳어 버린 혀를 놀려 기도했다. 「곧 체포되기를 바라옵니다……. 곧 체포되기를 바라옵니다.」 그는 탈출하려 했지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바람이 잠잠해지지 않을 때면 몸조차 눕히지 못했던 서아프리카 한 부족의 추장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때리려고 치켜드는 마리아의 손, 어스름 속에서 애어른처럼 떠들어 대는 페드로, 숲을 뒤지는 경찰들. 폭력은 도처에 있었다. 그는 조용히 기도했다. 「아, 하느님, 통회하지 않겠사오니 어떤 식으로든 죄 중의 상태로 저를 죽여 주시고, 다만 이 애를 구하소서.」 그는 영혼들을 구제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한때 그 일은 정말 간단했다. 축복의 기도를 내리고, 조합을 만들고, 창살이 달린 창 안에서 할머니들과 커피를 마시고, 검은 장갑을 끼고 작은 향으로 새로 지은 집을 축성하는 일……. 그건 돈을 모으는 일만큼이나 쉬웠는데 이제는 신비로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그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절망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낄낄대며 도망가려고 하는 아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사랑한다, 얘야. 난 네 아버지고 너를 사랑한단다. 넌 알고 있어야 해.」
<사생아>라는 단어를 들으니, 사랑에 빠진 남자가 애인의 이름과 같은 꽃 이름을 낯선 남자가 입에 올리는 걸 들을 때처럼 그의 가슴이 쓰라렸다. <사생아!> 그 단어 덕분에 그는 비참한 행복에 푹 빠져들었다. 그 단어를 떠올리자, 아이가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쓰레기 더미 옆 나무 아래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딸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했다. 무심함을 가장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는 다시 <사생아>라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