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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20290
· 쪽수 : 252쪽
책 소개
목차
라하트 하헤렙
작품 해설
불의 신학, 칼의 미학/ 정영훈
작가의 말
작가 연보
저자소개
책속에서
“여기에 담배가 존재하는가 연기가 존재하는가?” 막상 질문을 받게 되니 갓 삭발식을 올린 사문처럼 말문이 막혔다. “담배가 연기로 변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지. 담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연기로 변해 버려. 연기는 공기 중에 흩어져 곧 사라지므로 원래 존재라고 볼 수 없으니까 담배도 연기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지. 다만 담배가 연기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꽃만이 생생하게 실재하는 거지. 난 우리 인생도 이 불꽃과 같다고 생각해. 죽음의 연기를 피워 올리며 소멸되어 가는 과정에서 타고 있는 불꽃 말이야. 불꽃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담배가 빨리 타 들어가듯이, 활활 타는 불꽃같은 인생은 빨리 소멸되는 법이지. 랭보, 니체, 이상, 전혜린…….”
“난 말이지. 담배를 피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지. 누가 내 인생을 담배처럼 말아서 피우고 있다고 말이야. 그것은 신이라고도 할 수 있고 거대한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고 직속상관이라고도 할 수 있지. 화랑 담배? 그렇지. 삼국통일이라는 거대한 역사가 말아서 피워 버린 인생들이 화랑이 아닌가 말이야. 난 담배를 빨아들이면서 이렇게 속으로 소리치지. 누군진 모르겠지만 힘껏 나를 빨아들이시오, 내 인생이 찬연한 불꽃이 되도록…….”
“다른 사병이라면 몰라도 군종 사병이 이러니 이상하군. 신을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대담하고 평안해야 하지 않나?” 제기랄 군종 사병이 아니라 군목입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가 너무 아픈 데를 찔렀나? 허긴 아직 이등병이니까 불안하기도 하겠지. 이 약 먹고 기도도 열심히 하라고. 흐흐흐…….” 군의관의 웃음에는 유신론자에 대한 무신론자의 우월감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