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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예술

그을린 예술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삶의 불길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심보선 (지은이)
  |  
민음사
2013-05-24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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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예술

책 정보

· 제목 : 그을린 예술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삶의 불길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37487729
· 쪽수 : 272쪽

책 소개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심보선 저자의 신작. 거리에 응집했다 사라지는 예술, 공동체 속의 예술, 평범한 노인의 시, 철거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타들어 가고 부스러지는 우리의 삶 안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그을린 예술’에 대한 사유와 증언.

목차

프롤로그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다른 곳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삶 속에서, 삶의 불길에 그을린 채. 7

1부 동물과 속물 사이의 인간, 우정, 예술
우정으로서의 예술 21
환승, 인간적인, 가까스로 인간적인 35
1987년 이후 스노비즘의 계보학 43

2부 예술과 공동체
불편한 우정과 어떤 공동체 73
우리가 누구이든 그것이 예술이든 아니든 90
두리반, 자립 의지의 거점 107
예술가의 (총)파업 122

3부 예술의 죽음, 예술의 부활
잔존하는 문학의 빛 137
저자, 전자책, 전자문학 152
예술상(賞)과 예술장(場) 173

4부 ‘누구나’의 문학과 정치
'천사'에서 '무식한 시인'으로 203
‘누구나’의 얼굴을 보라 231

5부 예술과 민주주의

책속에서

우리가 예술을 창작하고 해석할 때 행복한 이유는 자신의 평범하고 궁색한 처지를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고, 나아가 그것을 친구-타인과 함께 지각하고 나누면서 인간적으로 갱신되고 고양되기 때문이다. 이 행복감은 단순히 심리적인 위로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창작(해석)이 이루어지고 친구-타인과의 우정이 맺어지는 장소와 관계 속에서 현실화된다.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실행되는 이 희박하고 희미한 장소, 관계야말로 속물화와 동물화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적 현실에 대항하는 현실적 거점이다. 바로 이 거점에서 예술의 말과 행동은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수용하면서 거부하는, 증언하면서 저항하는 실천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예술은 겉으로는 모순어법처럼 보이지만, 생생한 현실성을 가진 감각과 신체를 구현한다.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창작과 해석, 친구-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각하고 나눌 때, 인간은 비범해지고 위대해진다. 평범한 비범함, 궁색한 위대함이야말로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밝히는 인간적 실존이다. 이 실존으로 인해 인간은 가까스로 타인과 함께 평등해지고, 가까스로 자신의 자유를 되찾고, 가까스로 세계의 비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되묻고 싶다. 재능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서라도 창작에 매달리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사회학적으로, 경제학적으로 승자 독식의 논리가 문학장에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재능을 판단해 보건대 성공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 말은 아프게 들리겠지만 사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창작을 그만두지 않는, 혹은 창작을 그만두었다가도 언젠가는 창작으로 돌아오리라 결심하게 하는, 그리고 기어이 돌아오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어리석음인가? 집착인가? 과욕인가?
창작을 하는 모든 이에게, 프로건 아마추어건, 누구에게나 드리우는 빛이 있다. 그것은 숭배의 빛도 선망의 빛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문학적-예술적 제작, 즉 창작의 기쁨에서 오는 행복의 빛이다. 이 행복이야말로 창작자가 창작을 멈출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니체는 예술이 창작자에게 “행복의 약속”을 제공한다면서 “사심 없음(disinterstedness)”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칸트 미학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예술이 너무나 “사심 있는(interested)”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때의 사심이란 위대한 단독자로 숭배를 받고 싶다거나, 대중적 인기를 끌고 싶은 사심이 아니다. 니체에 따르면 그것은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아나 자신과 영원히 살았으면 하고 바랄 때의 간절한 소망 같은 사심이다. 창작의 기쁨은 창작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와 놀고, 싸우고, 씨름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그것에 질서와 형태를 부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과 마치 연인과도 같은 인격적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누구나 글을 쓴다면, 등단하지 않더라도 시인이요, 소설가다.”라는 나이브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이란 창작자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최선의 결과를 낳으려는 간절한 소망에서 출발하며 그 소망을 이루려는 의지를 발휘함으로써 중단 없이 이어진다. 나에게 문학적 재능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그 소망과 의지를 끝내 행복에 다다르게 하는 집중력과 주의력을 뜻한다. 그토록 쉼 없는 집중력과 주의력을 요한다는 점에서 창작의 행복은 달성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창작의 행복을 달성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창작의 행복은 지배적 사회질서를 따라 노동력과 자원을 분배하고 작동시키는 제도적 장치들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자크 랑시에르를 따르자면 창작의 행복은 제도적인 장치들이 사회적 신체들에게 할당한 감각의 고정된 자리를 거스르고 가로지르며, 그것과 싸우며 성취되는 것이다. 요컨대 창작의 행복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행복, 즉 ‘그저’ 성공과 안정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며 어렵사리 지켜내는 것이다.
나는 문학 창작의 행복이 창작자 자신이 혼자서 느끼고 마는 자족적인 행복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창작자는 언제나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창작자는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으로 ‘나누어지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인정 욕망이다. 그런데 현대의 예술장, 혹은 문학장은 인정 욕망을 소수에게만 선망의 빛을 허락해 주는 승인(approval) 장치들을 통해 충족시키려 한다. 상승하는 세일즈 포인트와 문학상 수상, 메이저 신문과 잡지의 언급, 비평가의 심오한 해석 등이 불안한 창작자들을 임시적으로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인정(recognition)이란 무엇보다 ‘다시-알아봄(re-cognition)’이다. 인정이란 창작자가 제작 과정에서 작품에 투여한 열정과 의미를 독자가 다시 알아봐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인정은 외적인 척도들에 의해서 작품의 가치가 평가되는 ‘승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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