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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39206366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심부름 | 아침, 식구들 | 백기호 | 생애 최고의 심부름 | 배도연 | 체육시간 | 학교 창고 | 마지막 편지 | 등화관제 | 낙화 | 영부인 | 아버지 | 황 씨 | 파경 | 열일곱 살 | 첫사랑 | 사랑이 너무 힘들다 | 스승의 날 | 김분자 선생 | 미선이 | 수학여행 | 대통령 | 목화밭 | 제의 | 귀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언니의 마지막 편지는 가벼웠다. 내 손에 부피감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이었다. 이렇게 가볍다면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편지에 글자는 쓰지 않고 띄어쓰기만 가득 한 것은 아닐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 편지를 그에게 전해줄 수는 없었다. 지난주에 그를 향해 잘 먹고 잘 살아라 라는 말을 퍼붓고 왔는데 그에게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에게 그런 말을 퍼붓고 왔다고 언니들한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알겠다고만 말을 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 그의 집 근처 공사장으로 갔다. 공사장 파란 포장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집은 지어지지 않았고, 나무들을 덮어둔 파란포장은 먼지를 먹으며 늙어가고 있었다. 나는 편지봉투를 뜯었다. 글씨는 가지런한 강희언니의 치아처럼 바르고 고왔다.
“여자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아. 깨어진 그릇으로 밥을 담아 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대로 버려지는 거다.”
아버지의 말을 나는 수긍할 수 없었다. 여자가 질그릇으로 비유되는 것부터가 나는 기분이 나빴다. 여자는 그냥 사람이다. 질그릇도 아니고 접시도 아닌 남자와 똑같은 인간인 것이다.
나무가 나를 감쌌다. 햇살에 이파리는 은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녹색으로 변했다. 이파리가 손바닥을 뒤집을 때마다 바람이 빠지며 풍금소리가 났다. 하지만 바람이 나간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나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하나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좀 전의 웃음을 그대로 입에 물고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