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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외교정책/외교학
· ISBN : 9788946055834
· 쪽수 : 488쪽
책 소개
목차
머리글 정보세계정치의 이해
제1부 정보세계정치의 기원
제1장 한국 인터넷 문화의 역사적 추적: 집합지성보다는 커뮤니티? _ 김상배
1. 머리말
2. 지식정보 협업의 두 가지 모델
3. 동아시아의 ‘백과사전’ 전통과 편찬·편집 문화
4. 지식정보의 나눔 문화와 소통 문화
5. 유학적 지식관과 토론 문화
6. 맺음말
제2장 근대 기술 개념의 전파와 변환: 실학, 동도서기론, 개화론 _ 김상배
1. 머리말
2. 전통 동아시아의 기술 개념
3. 실학의 기술 개념
4. 동도서기론의 기술 개념
5. 개화론의 기술 개념
6. 맺음말
제3장 근대 인쇄 미디어와 언어민족주의 형성: ≪독립신문≫의 한글전용론 _ 최은실
1. 머리말 119
2. 근대적 미디어의 출현과 민족주의 형성
3. 근대적 미디어 ≪독립신문≫의 출현과 그 의의
4. ≪독립신문≫의 한글전용
5. 한글과 민족의 관계설정: 언어민족주의적 사상의 맹아
6. 맺음말
제2부 정보세계정치의 변환
제4장 냉전과 인터넷: 정보 미디어의 국제정치적 구성 _ 최인호
1. 머리말
2. 인터넷과 냉전 체제의 구성적 관계
3. 1950년대 소련의 핵 개발과 SAGE의 건설
4. 소련의 ICBM 개발과 ARPANET의 건설
5. 맺음말
제5장 프랑스 문화외교의 변환: 알리앙스 프랑세즈를 중심으로 _ 곽민경
1. 머리말
2. 이론적 배경
3. 1980년대 프랑스 문화외교 조직 변화의 배경
4. 알리앙스 프랑세즈를 통한 프랑스 정부의 전략
5. 프랑스 정부-알리앙스 프랑세즈 조직 변화의 함의
6. 맺음말
제6장 신세계 정보 커뮤니케이션 질서를 넘어서: 맥브라이드 보고서와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 _ 황예은
1. 머리말
2. 국제정치학적 시각
3. 맥브라이드 보고서와 WSIS 공식 문서의 관념적 유사성 및 차이점
4. NWICO 논쟁과 WSIS의 행위자들과 국제정치경제적 맥락
5. 국제 정보 질서의 제도적 측면의 변화
6. 맺음말
제7장 세계 정보격차 해소와 국제기구의 역할: ITU와 세계은행의 네트워크 전략 _ 김지연
1. 머리말
2. 분석 틀: 네트워크 이론의 시각
3. 2000년대 이전 ICT4D의 한계: 지식의 부재
4. 국제기구의 등장: 왜 국제기구여야 하는가?
5. 네트워크로 보는 ITU의 전략
6. 네트워크로 보는 세계은행의 전략
7. 맺음말
제3부 정보세계정치와 한국
제8장 국제영화제의 네트워크 세계정치와 한국의 전략 _ 백지연
1. 머리말
2. 영화제 시스템의 문화 권력
3. 영화제 네트워크
4. 한국형 영화제 모델
5. 맺음말
제9장 일본 내 한류 문화외교와 그 과제: 네트워크 이론을 중심으로 _ 문재연
1. 머리말
2. 한류 네트워크의 이론적 이해
3. 한류 기업 네트워크 전략
4. 일본 소셜 네트워크
5. 한국 정부의 대응과 한류 공공외교에 대한 전망
6. 맺음말
제10장 소셜 미디어와 대중의 외교정책태도 _ 송태은
1. 머리말
2. 외교정책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태도
3.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변화와 다중의 출현
4. 외교정책의 특성과 네트워크 다중의 집합행동
5. 맺음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국 인터넷 사이트의 특징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객관적 지식정보를 책임지고 전달하거나 교환하는 사이트가 약세인 반면에, 주로 사회적?인간적 관계 맺기를 목적으로 하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가 강세이다. 한국의 인터넷에서 누리꾼이 열심히 하는 것은 책 속에서 보는 것과 같은 종류의 지식이라기보다는 싸이월드와 같은 사이트에서 이루어지는 일촌 맺기형 네트워킹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 토론방이나 게시판에서 오고가는 내용은 객관적 지식이라기보다는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쟁점이 된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전문가 사이트는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적다.
사대부가 벌인 지식 논쟁은 단순히 지식의 진위를 따지고 정리해서 공유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대부가 주장하는 지식의 정치적 정당성과 규범적 우월성을 겨루는 성질의 것이었다. 17세기 후반 조선에서 벌어졌던 예송 논쟁은 바로 이러한 사대부 사회의 특징을 엿보게 하는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논쟁 과정에서 사대부가 주장하는 지식의 타당성은 항시 도덕적 원리의 외양을 하고 주장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격적 완성도와 동일시되곤 했다. 따라서 나의 생각을 폄하하는 것이 나의 인격을 폄하하는 것이고 결국 나의 학문적 미숙을 비판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시도가 가졌던 기본적 한계는 서양의 기술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당장 필요해 보이는 무기 기술만을 도입하려고 완제품을 분해해서 그 설계도를 엿보려는, 이른바 ‘역설계’를 통해 단편적으로 모방하는 데에 있었다. 역설계의 한계는 완제품에 드러난 설계 구상만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을 뿐이지 원래 설계 구상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테크네의 관점에서 ‘technology’를 보려고 했던 당시 기술관의 한계를 발견한다. 당시 동아시아인을 압도했던 서양의 군함이나 대포는 어느 장인의 뛰어난 기예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기보다는 서양의 근대적 지식 체계의 종합적 산물로서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