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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88946063457
· 쪽수 : 40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5·18, 열흘의 항쟁
김의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1980년 5월)
김종태: 광주 시민·학생들의 넋을 위로하며(1980년 6월)
김태훈: 전두환은 물러가라!(1981년 5월)
홍기일: 성냥이 필요합니다(1985년 8월)
송광영: 대구에는 전태일 광주에는 송광영(1985년 9월)
장이기: 광주 시민 학살한 전두환을 처단하자(1986년 3월)
표정두: 나답게 살고 싶다(1987년 3월)
황보영국: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1987년 5월)
박래전: 그래도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겨울꽃(1988년 6월)
김병구: 외롭고 높고 쓸쓸한 투쟁(1989년 9월)
에필로그: 5·18과 6·10 항쟁 그 후 30년
저자소개
책속에서
5월 30일은 5·18이 진압된 지 만 사흘이 되는 날이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은 계엄사가 요구하는 대로 광주에서 폭도들에 의한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고 보도할 뿐, 광주에서의 학살 혹은 광주에서의 항쟁 소식을 알지도 못했고 알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의기가 작성한 전단지 내용을 확인한 계엄군 지도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의기가 쓴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 광주의 진실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엄 당국은 도대체 어떻게 김의기가 그 사실을 알아냈는지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집 수색에 서는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다. 경찰은 수색 세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마장동 김의기 집을 찾아 비로소 김의기가 숨진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_ 김의기
김종태가 분신하면서 뿌린 전단지는 두 가지 종류였다. 하나는 「광주 시민·학생들의 넋을 위로하며」라는 제목의 세 장짜리 긴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명서」라는 제목의 한 장짜리 짧은 글이었다. 김종태의 단정하고 정성스러운 글씨가 인상적인데 철필로 써 내려간 것을 등사해 만든 것이었다. 전국에 수만, 수십만 명의 기자와 대학생, 지식인이 있었지만, 광주에서의 참상을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있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던 1980년 6월이었다. _ 김종태
‘피 묻은 권력’에 굴복할 수 없어 싸웠고, 그 결과 법정에 서게 됐다는 유시민은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학생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독백을 인용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유시민이 「항소이유서」를 쓴 날인 5월 27일은 여러 의미에서 특별한 날이었다. …… 유시민에게 5월 27일은 5년 전, 계엄군에 맞선 광주 시민들이 전남도청에 장렬히 산화한 날이요, 인간 구원을 위해 부처님이 세상에 온 날임과 동시에 벗이요 동지인 김태훈 열사가 4년 전,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계단을 피로 적시며 숨져간 날이었다. _ 김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