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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회고록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회고록 (양장)

(동독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증언하다)

요아힘 가우크 (지은이), 손규태 (옮긴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2018-03-26
  |  
3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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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회고록

책 정보

· 제목 :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회고록 (양장) (동독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증언하다)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46064638
· 쪽수 : 376쪽

책 소개

2017년 퇴임한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독일이 분단되어 있던 시절 공산당의 탄압 속에서도 동독의 민주화를 이끈 인물로, 앙겔라 마르켈 총리로부터 "민주주의의 진정한 스승이자 자유, 민주, 정의의 쉼 없는 대변자"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목차

1장. 내가 자란 곳: 어린 시절이 더 좋다
2장. 여름 속의 겨울: 아버지의 실종과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
3장. 가거나 남거나: 서독으로 탈출한 동독인들의 이야기
4장. 길을 찾다: 신학 공부와 첫 목회 활동
5장. 선교지를 개척하다: 동독에서 시작된 교회의 사회변혁운동
6장. 사회주의 내에서의 교회: 기독교와 사회주의 간의 대결과 대화
7장. 붉은 국가에서의 억압적 교육: 동독에서 교회의 평화운동이 시작되다
8장. 예를 들자면: 양 독일과 교회 사이의 정치범 교환 프로그램
9장. 가을 속의 봄: 동독의 민주화와 혁명의 시작
10장. 동독 인민의회의 자유선거 실시: 통일을 둘러싼 재야 세력의 상반된 이해
11장. 설계도 없는 건축: 동독 국가안전부에 대한 역사 청산 작업
12장. 소란스러운 날들: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동독 역사 청산 작업
13장. 내가 생각하는 자유: 자유에 대한 단상
14장. 베를린의 5월: 통일 이전의 동독 생활에 대한 회상
15장. 3년 후: 독일연방공화국의 대통령 당선

저자소개

요아힘 가우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0년 독일 북동부에 위치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로스토크에서 태어났다. 해운회사의 선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나치 간첩 혐의를 받아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간 일을 계기로 민주화에 눈을 떴다.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던 탓에 목표를 수정해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었다. 동독 체제에 반감을 가졌으나 동독을 떠나지 않고 동독에 머물면서 반체제·반정부 인사로 활동했다. 처음부터 동독의 체제와 거리를 둔 가우크는 국가안전부(슈타지)의 주요 감시대상이었음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 “교화 불가능한 반공산주의자”라는 기록이 국가안전부 문건에 남아 있기도 하다. 1989년 동서독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과정에서는 동독에서 처음 실시된 자유선거를 통해 인민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어서 동독 국가안전부의 문서들을 처리하는 문서관리청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10년 동안 국가안전부의 비밀문서와 반인권 사례를 조사하면서 동독의 역사 청산 작업에 크게 공헌했다. 2012년에는 제11대 독일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2017년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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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신학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명예교수이다. 저서로는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평화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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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척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비교할 만한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르웨이의 해안 절벽이나 그리스의 지중해 해안선을 보지 못했고, 론강을 따라 내려가거나 도버해협의 절벽 위에 서 보지 못했으며, 로마의 베드로성당을 가보지도 못했다. 우리는 서방의 책을 읽고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옷을 입지만 시골뜨기에 불과했다. 우리는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과장했다.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기 위해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을 억눌렀다.


신학 공부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목사가 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목사가 되는 것은 너무 세속적으로 여겨졌다. 나는 신학을 오히려 철학의 한 분야라고 보았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단지 추측과 암시로만 신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검증하고 세계에서의 나와 나의 위치에 관해 더 경험해보고 싶었다. 특히 당시 지배적이던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논거들을 얻고자 했다. 나는 강단에 서서 하나님 나라를 알리는 소명을 받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이고 정치적 이유로 신학과를 선택했다. 신학과는 국가와 당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독립적 사고가 가능하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내에 있는 교회’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주의적 교회라는 말 자체에 모순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이는 필요할 경우 사회주의적 조건을 받아들이는 교회를 뜻하는가? 아니면 동독공산당의 강령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교회를 뜻하는가? 아니면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을 특별히 고려하면서 인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의 삶이라는 윤리적 전망을 목표로 하는 교회를 뜻하는가? 공식적인 표현에 대한 지방교회 간 의견이 분분해 이 논의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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