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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공학계열 > 도시/환경공학 > 도시계획/설계
· ISBN : 9788946066526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황야의 무법자-3대공간 확충정책
1. 3대공간 확충정책을 표방하는 과정
2. 도로공간의 확충
3. 주차공간‧녹지공간 확충
신무기 개발기지가 서울대공원으로
1. 입지결정과정-박 대통령과 김재춘
2. 공원계획의 내용
3.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인구집중방지책과 행정수도 전말
1. 서울인구 격증과 인구집중방지책의 전개
2. 수도권 인구재배치계획과 과천 신도시 건설
3. 행정수도-1977년 말까지
4. KIST 지역개발연구소에서의 작업
5. 행정수도의 종말과 유산
주택 5백만 호 건설과 목동 신시가지 개발
1. 전두환 대통령과 주택 5백만 호 건설 발표
2. 택지개발촉진법의 시행과 결과
3. 서울에서의 공영개발과 목동지구 설계
4. 생존권(주거권)이라는 이름의 저항
5. 서부지구의 핵이 되었는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김현옥 시장은 기발한 쇼맨이었고 탁월한 연출가였다. ‘도시는 선이다’라는 슬로건이 시청 정문에 게시되었을 때는 그 말이 지닌 의외성·함축성에 온 시민이 놀라워했다. “8월 15일까지 교통난 31%를 완화하겠다”는 공약에 접했을 때 많은 시민은 왜 30도 35도 아닌, 31%여야 하느냐에 오히려 감탄할 정도였다.
주요공사의 기공식·준공식을 3·1절이니 5·16, 8·15 또는 개천절을 택한 것도 그가 최초였다. ‘몇 월 며칠까지 완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도 그였다. 세종로지하도도 무악재길도 삼일로도 그렇게 해서 개통되고 확장되었다. 그리고 가장 사람의 통행이 많은 시간에 이들 공사장 한가운데 헬멧을 쓰고 지휘봉을 든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한강개발을 할 때에는 시(詩)를 써서 각 언론기관에 돌리고 스스로도 그 시에 도취되는 그런 인물이었다.
_ 1권에서
45세 김현옥과 35세 김수근의 ‘일을 통한 최초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 단계에서 완전히 의기투합했다. ……김수근은 그 후의 시장들과도 매우 친숙한 관계를 맺었다. 구자춘 시장(1974~78년)과도 가까워 이른바 삼핵도시개발을 구상한 김형만은 김수근이 구자춘에게 소개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구자춘 시장 재임시에 김수근은 잠실대운동장(훗날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착수했고 그 작업은 그후 정상천·박영수·김성배·염보현 시장으로 이어지는 1986년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김성배 시장은 김수근을 대단히 좋아해서 김 시장이 목동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김수근을 불러 상의했고 그 결과 김수근과 그가 추천한 인물들에 의해서 오늘날의 목동지구가 실현되었다.
_ 1권에서
“청와대와 상공부장관이 돈을 내고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 하수인으로서 토지를 매점하고 서울특별시장이 땅값 빨리 올라라 깃발을 흔들고 많은 시민이 땅값 올리기에 동참을 했으니” 생각해보면 온 국민의 분통이 터지는 웃지 못할 만화요 연극이었다. 연극이라면 그것을 희극으로 볼 것인가 비극으로 볼 것인가. 여하튼 1970년 전반에 4,500∼6,000원이던 강남의 땅값은 1971년 전반에는 1만 4천~1만 6천 원이 되었다. ……1963년의 땅값수준(지수)을 100으로 했을 때 1970년 현재, 현 강남구 학동은 2,000, 압구정동은 2,500, 신사동은 5,000이었다. 7년간에 각각 20·25·50배가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에 중구 신당동과 용산구 후암동의 땅값은 각각 10배와 7.5배가 오른 데 불과했다. 그런데 1970년대의 말 즉 1979년 현재로 학동·압구정동·신사동의 지가지수는 각각 13만 3,333과 8만 7,500 그리고 10만이었다. 즉 1963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16년간에 학동의 땅값은 1천 333배가 오르고 압구정동은 875배 올랐으며 신사동은 1천 배가 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기간(1963∼79년) 중구 신당동과 용산구 후암동은 각각 25배씩 올랐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말죽거리 신화’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강남의 땅값 상승 즉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는 198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되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도 식을 줄 모르고 꾸준히 지속되었다.
_ 3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