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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통일/북한관계 > 북한학 일반
· ISBN : 9788946070028
· 쪽수 : 288쪽
책 소개
목차
서론 변화하는 수령의 나라
제1장 수령공동체의 완성
제2장 공동체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의 확장
제3장 경제질서의 재편과 ‘관료적 시장’의 형성
제4장 화폐적 관계의 확산과 주민들의 변화
결론 황금주판을 두드리는 혼종체제
저자소개
책속에서
수령공동체에서 돈은 결코 적절한 매개물이 될 수 없었다. 화폐로 서로의 의무감을 청산하는 것은 인간관계 중에서 상대가 상대를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공동체는 개인적, 물질적 이해가 아닌 전체의 도덕적 가치에 의해 생산과 배분을 조직했다. 이른바 ‘도덕경제(moral economy)’이다. 도덕경제에서 개인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 즉 공동체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 수령공동체 내부에서 물적 재화의 생산과 분배는 정치·사회관계와 일체화된다. 제도적으로 분리된 경제시스템은 없다. 경제제도의 독자성은 부정된다. 수령공동체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온갖 종류의 감성적, 전통적 유대로 강력하게 결합되었다. 주민들의 공속성(共屬性)을 바탕에 둔 사회적 관계는 더욱 결속력을 높여갔다. (84쪽: 제1장 “수령공동체의 완성” 中)
고난의 행군은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 ……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는 무능했다. 주민들은 점점 국가를 믿지 않게 되었다. 오직 자신의 능력에 기댔다.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위기로 재정이 없는 국가는 기업에게 오히려 성가신 짐이 될 뿐이었다. 오히려 국가는 엄혹한 시기, 주민들에게 마지막 남은 삶의 기회마저도 앗아가려 했다. 1991년의 농민시장 단속과 1998년의 시장규제가 그것이다. 1991년 비사회주의 현상의 확산 차단이라는 명분으로 농민시장 단속을 강화하면서 그동안 완화했던 농민시장을 모두 10일장으로 환원했다. 장날은 월 3회로 엄격히 제한하고 반입된 물건의 양에 따라 2원 내지 5원의 장세를 징수했다. 그러다 1993년 들어 이 같은 조치를 다시 완화하여 매일장을 재허용했다. 북한은 노동자들의 공장복귀조치 등을 통해 시장경제의 확산을 막으려 하기도 했다. 비사회주의적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총을 들고 장사행위를 막아도 주민들은 말을 듣지 않았으며 저항까지 했다. ‘눈물의 골짜기’를 지난 주민은 옛적 그 ‘착한 백성’이 아니었다. (107쪽: 제2장 “공동체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의 확장” 中)
등가체계의 와해는 주민들에게 화폐물질에 수량을 부여하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주민들 스스로 가격을 매기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무상으로 제공되었던 재화나 서비스에 가격이 붙기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나 의료인의 업무시간 외 진료행위도 공짜가 아니었다. 개인들이 가진 재주를 남을 위해 쓰는 일도 모두 정가가 매겨졌다. 주민들은 “배웠으면 일정하게 물질적 자극을 줘야 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거래는 화폐로 결제되고, ‘흥정’이 북한 전역에서 일반화되었다. ‘공짜’는 거의 사라졌다. 화폐는 주민들의 의식 속에서 강력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공동체가 반포하는 등가가 무너진 대신, 주민들 머릿속에 화폐물신과 ‘정가’ 결정 기계가 하나씩 들어앉았다. (137쪽: 제2장 “공동체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의 확장”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