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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초등5~6학년 > 동화/명작/고전
· ISBN : 9788950917401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족장 알리 바누
난쟁이코
아브넬, 아무것도 보지 못한 유대인
가난의 수호천사 슈테판
갓 구워 낸 머리
영국 청년
알만소르 이야기
책속에서
"오늘 아주 일찍 일어나셨군요. 그런데 아직 물이 끓지 않아서 어쩌죠? 이발을 하실 생각인가요? 아직 날이 찬데 모자라도 쓰고 계시지. 감기 걸리겠네요."
계속 수다를 떨며 알리는 손님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아무 말씀도 없으시네. 귀가 멀었나? 말도 못하시나 봐! 하긴 저도 애꾸예요. 우린 비슷한 처지로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남은 눈마저 멀더라도 전 손님의 머리를 깎아 줄 수 있을 정도로 솜씨가 아주 좋답니다. 제 면도 솜씨를 보면 깜짝 놀라실걸요. 어찌나 부드러운지 맛 좋은 와인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보다도 더 짜릿할걸요."
주절거리던 끝에 이발사는 늘 하던 대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세숫대야를 손님 옆에 가져다 놓고, 면도 붓으로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잔뜩 냈습니다. 그리고는 가위와 면도칼을 들어 가죽 허리띠에 문질러 가며 날을 세웠습니다. 다시 한 번 비누거품을 낸 알리는 말이 없는 손님에게 다가갔습니다. 세숫대야를 왼쪽에 놓고 손님의 머리에 물 칠을 했습니다.
드디어 손님의 머리에 손을 얹은 이발사는 화들짝 손을 떼며 움찔 뒤로 물러섰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무슨 머리가 얼음덩이보다 차죠?"
아무래도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발사는 다시 다가가 머리에 비누칠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머리가 그대로 쓰러지며 바닥에 쿵 소리를 내고 떨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악, 알라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본문 180~181쪽 '갓 구워 낸 머리' 중에서
젊은 청년은 중년 신사처럼 의젓하기만 했습니다. 아주 큰 안경을 척 하니 꺼내 쓰고 커다란 파이프를 입에 물고 담배연기를 내뿜어 실내를 자욱하게 만들었습니다. 매캐한 연기에 눈이 빨갛게 된 사람들은 콜록거리면서도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저토록 의젓한 청년을 나무랐다가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신문 기사들을 놓고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벌어졌습니다. 의사와 시장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으며 다툴 때면, 청년은 뭐가 못마땅한지 한 번도 장갑을 벗은 적이 없는 손으로 탁자를 쾅 하고 내려쳤습니다. 그건 누가 봐도 자신이 더 많이 그리고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실력 행사였습니다.
그런 다음 알아듣기 힘든 독일어로 뭐라 뭐라 중얼댔습니다. 시장은 정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기 때문입니다.
'나만 못 알아듣나?'
이런 생각이 든 시장은 어쩔 수 없이 자신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의사는 청년의 높은 정치 식견이 놀랍기만 하다며 박수를 쳤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영국 청년이 뭐든지 더 잘 아는 건 분명해 보인다고 말이죠.
-본문 221~222쪽 '영국청년' 중에서
난쟁이는 거위 세 마리를 우리 채 사서 듬직한 어깨에 지고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두 마리는 여느 거위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꽥꽥 울어 대는데 나머지 한 마리는 구석에 조용히 앉아 한숨만 푹푹 쉬는 게 아니겠어요? 신음을 하는 게 마치 사람이 내는 소리 같았습니다.
"병이 들었나? 아니야,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가서 이놈들을 잡아 요리를 해야 해."
야콥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거위가 갑자기 분명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내 목을 비틀면
난 널 물어뜯을 거야.
나한테 칼을 들이대면
나도 널 일찌감치 무덤으로 보내 줄게.
너무나 놀란 나머지 난쟁이코는 거위가 든 우리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거위는 그 아름답고 영리해 보이는 눈을 반짝이며 야콥을 노려보았습니다.
"이놈 봐라! 너 말을 할 줄 아는구나! 보아하니 암놈인 걸! 그럼 처녀 거위신가? 허허, 말을 할 줄 알리라곤 짐작도 못했네. 뭐 그렇게 한숨만 쉴 건 없어. 겁낼 필요도 없고! 나같이 인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같이 귀한 거위를 해코지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기를 해도 좋아. 너 원래부터 거위가 아니지? 나도 한때 다람쥐로 변해 봐서 지금 네 심정을 잘 안다고!"
"그래 맞아! 난 원래부터 이런 치욕적인 가죽을 쓰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요람에 누워 있는 예쁜 나를 봤더라면, 저 위대한 마법사 '염소 고집'의 딸 미미를 보았더라면, 공작의 부엌에서 내 목을 비틀 생각은 꿈에도 못할걸!"
-본문 59~60쪽 '난쟁이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