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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디자인/공예 > 공예/도자
· ISBN : 9788952758590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어둠의 바닥에서 찾아낸 천 년의 빛
프롤로그 옻칠로 한국의 혼을 깨우다
Part 1 옻칠의 신비에 사로잡히다
창백한 내 영혼의 뿌리
형의 죽음이 내게 남긴 것
꿈꾸는 시간조차 사치였던 세월
꿈의 단초가 된 낯선 경험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
옻칠의 신비에 빠져들게 한 와태칠
옻칠의 나라, 일본
운명적으로 나를 찾아온 조그만 밥상
Part 2 가고자 하는 길에 모든 것을 걸다
꿈의 연회장 메구로가조엔
일본에서의 첫 전시회
일본의 옻칠 기법을 순례하다
혼신을 다한 피와 땀의 기록들
일본의 국보급 장인도 포기한 송학도
마지막 승부수
피를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
일본의 자존심, 메구로가조엔에 입성하다
또 다른 복병, 비자 발급
메구로가조엔의 낮과 밤
천혜의 땅, 가와이무라
버려진 폐교를 최고의 칠예연구소로
대한민국 예린칠예연구소 개소식
Part 3 완벽을 향한 열정이 최고를 만든다
칠흑 같은 밤들을 하얗게 지새우다
일본화, 목판화까지 맡게 되다
조선 장인의 혼을 살려내다
난파선의 선장 같은 하루하루
가와이무라의 사계
자연의 축복으로 태어난 새 생명
세계 최초의 옻칠 엘리베이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
동심으로 만든 황홀한 우주 공간
전 생애를 걸고 완성한 사계산수화
철저한 원칙주의가 명품을 만든다
목숨을 건 6개월간의 사투
도쿄 하늘에 태극기가 휘날리다
Part 4 잊혀져 가는 옻칠 문화를 위한 집념
문화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
신비한 음색을 만들어내다
우리 문화의 혼불을 만나다
한국의 혼을 보여줄 옻칠 미술관을 세우다
천만금으로도 소유할 수 없는 시계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신비
오직 완벽함에만 허락되는 옻칠의 미학
에필로그 영혼에 옻을 입혀주고 싶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문득 강렬한 도전의식을 느꼈다. 내가 가진 혼, 나만의 힘을 이곳에서 펼쳐 보인다면 분명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간의 창작활동으로 내 독특한 작품세계를 꽤 인정받던 때였고, 스스로도 회화적 요소를 비롯한 예술적 감각을 풍부하게 지녔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분명히 그들의 작품에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의 작품들에는 삶에서 무르익은 혼과 철학이 있다. 민화만 보더라도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풍자정신, 샤머니즘이 녹아 있다.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티브는 바로 ‘민족’이었다. 내가 특별한 애국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만 표현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옻칠의 나라, 일본’ 중에서
나는 제일 먼저 현관에 걸린 천마도를 보는 순간부터 무릎이 굳어져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몇 번 일본을 오가면서 일본 작가의 작품은 접했지만 이처럼 거대한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게 한 것은 말의 탄력 있는 근육과 은은한 구름을 표현한 나전 기법이었다. 자개의 결을 살려 꿈틀대는 듯한 운동감을 드러내는 기법이 그동안 무수히 보아왔던 우리 선조들의 방식이었다.
‘아니, 이것이 왜 여기에 있는가!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닌가?’
탄식도 잠깐, 현관을 들어서니 온통 환상과 경이의 세계가 펼쳐졌다. 모든 벽과 천장 전체가 옻칠로 되어 있었다. 200여 개나 되는 방 하나하나가 모두 옻칠로 이루어진 별세계였다. 옻칠을 찬미하고 숭배하는 이들이 만든 성전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일 것 같았다. 특히 ‘나가도’라는 방에서 나는 숨이 콱 막혔다. 한쪽 벽면 전체를 장식한 송학도에는 어른 키보다 큰 학들이 나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길이는 어림잡아 7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작품 속의 학들은 주름질, 꺾음질 같은 조선 나전 기법의 세례를 듬뿍 받아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비록 세월에 부대껴 낡고 초라해졌지만 그 솜씨는 오롯하게 살아 있었다. 한국 선배 장인들의 땀과 정열, 칠 예술이 이 방에 모두 녹아 있었다.
그런데 작품의 한쪽에 죽파(竹波)라는 일본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고 그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광신(光信)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광신이라는 이름은 죽파라는 일본 화가가 도안한 그림에 자개를 새겨 넣은 조선의 무명 장인임에 틀림없었다.
- ‘일본에서의 첫 전시회’ 중에서
당신들의 신중한 면은 높이 평가하지만 나 역시 쉽게 대답한 것이 아니오. 나는 내 말에 목숨을 걸고 책임질 것이오. 이 일에 목숨을 건 사람 있으면 누구든 나와보시오.” 무슨 혈기였을까.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격앙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내가 걱정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1조 원대의 엄청난 공사, 국보급의 값진 미술품 복원, 더구나 선대의 유업을 훼손하지 않고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가 그리 녹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2년 동안 메구로가조엔을 다니며 떼어낸 옻칠 작품 조각을 주머니에서 하나 꺼내 비장의 카드처럼 그들 눈앞에 들이댔다.
- ‘마지막 승부수’ 중에서